[책과 길] 호기심 많은 영국인이 본 북한은 지금…

입력 2014-08-15 03:08
영국의 두 번째 북한 대사를 지낸 저자 존 에버라드가 북한 곳곳을 돌면서 찍은 사진. 외국인 방문객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평양 어린이들. 진한 화장이 눈에 띈다. 책과함께 제공
평안남도 남포해수욕장에 놀러온 북한 주민들. 책과함께 제공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는 호텔 앞에 선 신혼부부. 책과함께 제공
북한에 발령받은 외교관은 두 종류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떠날 날까지 며칠 남았는지를 세어가며 버티는 부류. 혹은 호기심에 전국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 저자 존 에버라드는 후자에 속한다.

에버라드는 2006년 2월 영국의 두 번째 북한 대사로 임명돼 2008년 7월까지 평양에 머물렀다.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은 특별한 평양 주민이었던 영국 외교관이 쓴 북한에 관한 보고서다. 저자는 책에서 “북한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제 국가이며, 그들의 삶은 이 나라의 정책이나 국제적 쟁점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 동료, 일상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을 다룬 책은 핵 확산, 군사행진, 지도자를 둘러싼 개인숭배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다. 그는 달랐다. 저자는 이 은둔형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깊은 애정을 느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과 국민에게서 받은 인상, 북한 사람들과의 교류,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등을 책에 담았다.

주로 만난 사람은 평양에 사는 ‘엘리트 비핵심층’이다. 이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일가나 측근과는 달리, 주로 관리직에 종사한다. 의식주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의사 결정권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편이다. 북한을 지탱하는 핵심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상당수가 빈곤층에 속하는 탈북자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 다른 책과 구별된다. 책에는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남한의 DVD 시청 같은 것이다. 평양시민은 DVD를 보다가 정전이 돼 DVD를 꺼내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경찰이 정전되기를 기다렸다가 남한 DVD를 시청할 것으로 의심되는 집을 급습해 플레이어 안에 DVD가 있는 현장을 잡아낸다. 적발될 경우 투옥되지만 보통은 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무마할 수 있다. 그만큼 북한 전역에 부패가 만연하고, 공직자들은 현금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진찍기 일화도 소개했다. 하루는 군인이 다가와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주는 사진을 찍었는지 검사한 적이 있다. 그런 사진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사진기를 돌려주면서 “좋은 것만 부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하던 그들을 기억하며 책의 원제를 ‘Only Beautiful, Please(좋은 것만 부탁합니다)’로 정했다.

책의 끝부분에서 저자는 현재 북한 상황의 상처가 곪아터질 때까지 놔두는 건 안전한 처사가 아니라고 조언한다. 그대로 두면 북한이 원조를 요구할 수 있는 협상 장으로 다른 나라를 끌어내기 위해 또다시 돌발 행동을 감행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 그 결과 통제 불능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재만 옮김.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