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전철 안에서 펼쳐든 손거울에 비친 낯선 여자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벌어진 모공에 짙은 팔자주름과 움푹 꺼진 눈…. 그녀가 나라는 사실을 자각하기까지 수초가 흐른 것 같다. 이럴 리가 없어. 조금 전 집에서 나올 때는 거울을 비춰보며 아직은 괜찮아 보인다고 나름 흡족해하지 않았던가. 혹시나 싶어 휴지로 손거울을 쓱쓱 닦아 보자, 이번엔 여자가 양미간에 주름까지 잡고선 못마땅한 듯 노려본다. 순간 무서운 진실 앞에 감전이 되는 듯했다.
백화점 거울에 비친 날씬한 모습에 ‘반해’ 앞뒤 없이 옷을 사버린 적이 얼마인지. 물론 집에 돌아가 입어보면 그때 그 맵시가 아닐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약삭빠른 백화점 거울들은 둘째치더라도 집과 사무실처럼 내 일상의 공간에서 비춰보는 거울이 이렇게까지 나를 배신할 줄이야. 내가 알고 있는 내 모습은 진짜일까. 도대체 이 세상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때로는 타인의 눈이 거울이 될 때도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만난 한 선생님은 서른 중반을 넘긴 날 보고 조금 과장을 섞어 ‘틴에이저’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2주일 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조심스럽게 내 모습이 나이 들어 보여 걱정스럽단다. 외모에 대한 평가는 애교다. 나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서도 극과 극의 반응을 듣지 않는가. 귀가 얇은 난 타인이라는 거울 앞에서 일희일비하기 일쑤다.
심리학에 거울처럼 상대의 행동 혹은 말과 표정 등을 그대로 따라하며 이해와 친밀감을 형성하는 미러링이라는 게 있다. 실제 미러링을 해볼 경우 뛰어난 상담사라도 상대의 모습을 100% 똑같이 보여주진 못한다. 나는 그가 아니고 그도 내가 아니기에, 우리가 살아온 삶의 렌즈로 상대를 비추기에 실제보다 오목하거나 볼록할 수밖에 없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 비추어 진짜의 나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진실에 다가가는 너무나 중요하고 풍성한 자원을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은 아니다. 진실의 거울은 어디에 있는 것일지 골똘해진다. 나의 내면이라 답하고 싶다가도, 얼마나 많은 착각과 욕심에 내 안의 거울이 덮여 있는지 떠올리니 또다시 미궁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다 전철 역 외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을 슬쩍 곁눈질한다. 저런, 풀 죽은 여자가 나를 흘낏 쳐다본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
[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진실의 거울
입력 2014-08-15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