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로 당초 13일 예정됐던 세월호 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무산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7일 여야 원내대표 합의안을 깨고 재협상을 요구하고, 새누리당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국회는 파행 국면을 맞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협상에서 서로에게 ‘내줄 만큼 내줬으니 이제는 상대방이 양보할 차례’라고 맞서고 있다.
이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운 대립 국면을 풀어내려면 여야 모두 ‘정치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기만 옳다면서 양보하지 않는 이런 방식으로는 전혀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마다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한 여야의 양보 폭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김병준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단 양쪽이 합의를 했으면 그 테두리 내에서 유족들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내야 한다”며 “유가족들의 모든 요구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더라도 특검의 임명 절차에서 어느 정도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야가 이해득실만 따지는 모습을 보이니까 ‘정치가 문제’라거나 의회는 박물관으로 가야 될 때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일단 새정치연합이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안을 일방적으로 깬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협상 대표로서 신뢰를 잃은 데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단일화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가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새정치연합이 기존의 합의안을 깨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새누리당이 백기투항하는 방식 외에는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 번 합의를 깨면서 신뢰를 잃은 박 위원장과 어떻게 협상을 할 수 있겠느냐”며 “여야 간 타협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만큼 조속하게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을 따로 떼어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지도력을 가진 구심점을 갖추지 못하고 오락가락한 야당에 책임이 있다”며 “이제 와서 특검 추천권을 달라는 제안에 새누리당이 응할지 여부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 위원장이 새정치연합에서 협상권을 갖고 있지 않는데 새누리당은 누구와 합의를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새누리당이 집권여당으로서 먼저 ‘통근 양보’를 하는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새누리당은 세월호 협상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부족해 보인다”며 “집권여당으로서 다시 한 번 여야 원내대표가 만나 협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당만 통큰 정치를 보여줘서는 답이 없다”며 “새정치연합도 강경 투쟁 방식으로 갈 게 아니라 각종 민생법안이나 ‘김영란법’ 등의 통과에 협조해주면서 세월호 특별법에서 필요한 부분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핵심쟁점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야의 당리당략을 떠나 추가 협상 과정에서 유가족들 의견을 공식적으로 반영하는 절차를 통해 접점을 찾으라는 얘기다. 여야 간 어떤 합의안을 내놓더라도 세월호 참사의 피해 당사자인 유가족 반발이 거셀 경우 추가 협상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론도 깔려 있다.
김경택 임지훈 기자 ptyx@kmib.co.kr
與는 통큰 양보, 野는 책임 통감… ‘정치의 묘’ 살려야
입력 2014-08-14 0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