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군대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어요, 어떡해야 하나요?”
최근 미 육군 병사의 부인이 포털 사이트 야후를 통해 남편이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이 남편의 커리어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까봐 언급하는 것 자체도 힘들다”며 고민했다.
한국이었다면 이때부터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된다. 온갖 연줄과 ‘빽’을 수소문하고, 지휘관을 만나러 가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한 네티즌은 “미 육군 규정 600-20, 4조 20항은 가혹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며 “남편은 즉시 상부에 가혹행위를 당한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못 받을 경우 기회균등부나 감찰부 등에 별도 신고하면 된다”고 답했다.
◇사령관이 가혹행위 근절 호소하는 편지 발송=버나드 샴포우 주한 미8군 사령관은 지난해 10월 직접 지휘관들에게 가혹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정책편지(Policy Letter)’를 발송했다. 그는 “만약 괴롭힘을 당한다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는 것이 군인의 의무”라며 “즉각적으로 지휘체계를 통해 보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부대 내 괴롭힘은 절대 환영받지 못한다. 근무환경을 가혹행위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헌신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샴포우 사령관은 부대 내 가혹행위 신고를 의무사항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집단괴롭힘을 상명하복의 일환이나 관행쯤으로 여기거나, 2차 피해를 우려해 피해 사실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미 육군 규정 뜯어보니=‘괴롭힘(Hazing)은 불필요한 이유로 학대나 욕설, 억압을 겪게 하는 것을 뜻한다. 신체적 고통이나 과도한 양의 음식과 술 등을 먹이는 것, 불법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 언어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미 육군 규정 600-20, 4조 20항은 괴롭힘을 이렇게 규정한다. 미 육군 규정은 휴가와 전출입, 인종과 성의 불평등 등 가혹행위를 근절할 방안을 상세히 담고 있다. 지휘관뿐 아니라 기회균등부, 감찰부, 군종부, 헌병사령관, 의무병, 법무참모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피해를 고발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신체적·육체적 고통을 주는 훈련도 부적절하거나 폭력적이라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가혹한 진급 세리머니(기념행위)는 근무 외 시간이나 비공식적인 행사에서도 금지된다’ 등 구체적인 상황도 밝히고 있다.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 성별 등에 따른 군인과 가족 구성원 차별에 대한 불만은 물론 군부대 내 불법행위도 여러 경로로 신고할 수 있다. 신고를 받으면 ‘지휘관은 물론 별도 장교가 지정돼 즉각 해결을 시도’해야 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지휘관의 신상기록에 이를 명시’한다. 신고자 역시 이런 사실을 통보받으며 ‘모든 것을 서면으로 기록’해야 한다.
가족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도 세심하게 배려된다. ‘배우자의 임신, 이혼, 사별은 물론 가족의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 등이 극심할 경우’ 지휘관은 병사 계급에 상관없이 가족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최근 여군이 늘면서 주목받는 성범죄의 경우는 더욱 구체적이다. 성범죄는 ‘언어적 범죄와 손시늉·키스·윙크 등 비언어적 성범죄, 길을 걸을 때 막아서는 것 등 신체적인 범죄’로 구별된다. ‘베이비(baby)’나 ‘내 사랑(sweet heart)’ 등으로 여군을 부를 경우 언어 성폭력으로 처벌받는다. 피해자가 소송을 원하지 않거나 상급 지휘부에 알리기를 원하지 않을 경우 의무적으로 비밀을 유지할 방법도 제공해야 한다. 또 규정 ‘암기 대회(Army Board)’를 열어 우수자에게는 진급 가산점 등이 포상된다.
◇“문제점 외부에 알리고 적극 대처해야”=미군은 군내 가혹행위와 불평등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모든 규정을 외부에 공개하고 위반 행위는 신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병사의 가족이나 친구 등 누구라도 신고할 수 있으며,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관이 강력한 조사권과 시정명령권을 가지고 사태 해결에 나선다.
반면 우리의 경우 대부분의 규정이 대외비로 취급된다. 병사나 가족들이 볼 수 있는 경우도 드물다 보니 규정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 육군 관계자는 13일 “미 육군의 경우 군 규정을 모두 인터넷에 공개해 사병들도 쉽게 자신의 고민 사항에 해당하는 규정을 찾아볼 수 있다”며 “피해를 당했을 때 스스로 규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할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미 육군이 가진 문화적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군 내부에서 벌어지는 불안한 일들에 대해 군대 내부에서만 해결하려하기보다 그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지를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우 전수민 기자 love@kmib.co.kr
[단독-전근대적 병영문화, 뿌리부터 바꾸자 (중)] 가혹행위·불평등 예방에 필요한 모든 규정 외부 공개
입력 2014-08-14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