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할 데가 없다’는 절망감은 종종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28사단 윤모(20) 일병 사망 사건이 ‘방아쇠’가 되면서 관심병사 사고가 잇따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가장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8만여명의 관심병사들은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야 할까.
전문가들은 “군대 내 상담기관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김완일 상지대 심리학과 교수는 13일 “일과시간에 상담을 받으러 가는 건 상당히 눈치 보이는 일인 데다 ‘고자질’한다는 눈총을 받기 십상이라 많은 병사들이 차라리 고통을 감내하는 편을 선택한다”면서 “그러나 타인에게 고통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자살률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용기 내어 상담관을 찾아가 마음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으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상담관들은 병사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고민 내용이 새어나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김용수 한국군상담학회장은 “군대 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아들도 군복무 시 한때 A급 관심병사였다고 한다. 그는 “아들은 좋아하는 축구를 통해 우울증을 회복했다”면서 “신체를 많이 움직이고, 어렵더라도 타인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면 치유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폐쇄적인 군대 조직문화의 특성상 가혹행위 피해자 상당수가 자신이 받는 고통에 대해 ‘응당 견뎌내야 할 일’이라고 인식하고 체념한다. 김의태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0대 후반∼20대 중반의 나이는 호르몬 변화 등으로 인해 정신적 충동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라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불면증과 불안감 등 정신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므로 혼자 앓지 말고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충고도 이어졌다. 김완일 교수는 “군대 조직 내에서 간부나 병사들이 흔히 계급을 자아와 동일시하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계급은 역할일 뿐 개인의 우열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에서는 계급이 낮으면 인간적으로도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군에서는 업무시간이 아닐 때 이등병이 사단장 앞에서 편안한 자세로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며 “우리도 공적 업무에서는 위아래를 분명히 하더라도 사적으로는 같은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병영문화의 고질적 악습을 없애려면 외부 전문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종익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군이 병사들의 심리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 정신건강의학과적 문제로 인식하고 정신과 의사들에게 심리상담 아웃소싱을 맡기는 등 구체적인 해결책을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완일 교수는 “여러분은 시간을 허비하려고 억지로 군에 끌려온 게 아니다. 여러분이 없으면 나라를 지키는 군대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만큼 개개인이 병영생활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국군 병사들에게 전했다.
정부경 백상진 조성은 기자 vicky@kmib.co.kr
[전근대적 병영문화, 뿌리부터 바꾸자] “계급 낮으면 인간적으로도 열등하다는 인식 문제”
입력 2014-08-14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