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종교적 방문·사회적 약자 위로 행보 닮아

입력 2014-08-14 03:13
1989년 10월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 장엄미사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오른쪽)가 메시지를 발표하기에 앞서 김수환 추기경의 안내를 받고 있다. 가톨릭신문 제공
역대 교황 중 한국을 최초로 방문한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다. 1984년 한국을 방문한 뒤 89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흘러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84년, 89년과 2014년. 한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간극이 있지만 두 교황의 방한 일정은 묘하게 닮아 있다.

외견상 방한은 두 교황 모두 종교적 차원의 방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수장으로서 한국과 아시아의 천주교 신자들을 만나러 온다. 가장 중요한 행사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이다. 84년 당시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일정에서도 103위 시성식이 가장 중요했다. 89년 방문 당시 주요 행사는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였다.

두 교황의 또 다른 교집합 행보는 사회적 약자와 청년과의 만남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84년 방한 때 젊은 신학생들과 만났다. 또 소록도 병원을 찾았고 부산에서 노동자와 농민들을 만났다. 89년엔 한국에 오자마자 ‘젊은이 성찬제’부터 찾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공식 목적도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이다. 여기에 장애인과 세월호 생존자·유가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의 만남도 일정에 추가했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랬던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황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83년 미얀마에서 벌어진 ‘아웅산 테러 사건’을 무모한 테러 행위로 단정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이 교황을 통해 대북 선전전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남북 갈등 상황에서 북한의 테러에 대해 규탄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화해와 평화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배석하는 만큼 일정 수준의 대북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치 이슈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에서 “국가와 교회 각자의 별도 권능을 존중하면서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해야 할 것”이라며 ‘정교 분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의 의도와는 달리 당시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교황의 공동 발표문으로) 전두환 대통령 정권은 체제 유지에 크게 자신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방한 당시 요한 바오로 2세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은 교황의 방문을 광주학살과 쿠데타를 용서하고 정권을 용인해준 것이라며 악용했다.

이에 반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인 차동엽 신부는 “천주교의 기본 기조인 정교 분리에 따라 교황이 약자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일부 사람들은 정치적 행동으로 본다”면서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