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지어 교세를 확장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이전에는 교회당을 크게 짓는 것이 성장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물론 어떤 시대나 건물은 필요하다. 혹시 보이는 성전이 꼭 필요하다면 수수하면서도 실용성 있게 최소한의 돈을 들여 짓는 게 좋다. 내용보다는 화려한 자태를 뽐내려는 듯 건축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건물은 조금 모자란 정도로 짓고 여러 번 모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건물보다는 보이지 않는 건물에 투자하자. 보이지 않는 성전, 바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미래 세대의 성공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이 말은 가정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 목회에도 해당된다. 일전에 어떤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받고 예배에 참석했다가 아주 희귀한 장면을 목격했다. 저녁예배에 참석한 젊은이의 수가 언뜻 보기에도 200명은 족히 됐다.
아주 큰 교회가 아니었던 그곳의 예배 분위기는 필자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저녁 성가대석에 앉아 있는 이들도 대부분 20대 청년이었다. 요즘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궁금증은 금세 해소됐다.
설교 후 담임목사가 나오더니 장학금 수여 순서를 갖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장학금은 ‘고(故) 홍길동 장로님 기념 장학금’과 같은 이름으로 대학생들에게 지급되고 있었다. 예배당 안에 있던 청년 대부분은 성도들과 장학금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였던 것이다. 그 교회는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한 가정과 연결되어 학자금을 지원받고 있었고 그 관계는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에는 두 종류의 성전이 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성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다. 만일 어려움에 빠진 한국교회가 세대 간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이 일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면 성도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는 데 힘써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매주 헌금의 일부를 떼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지어나가는 것이다. 이는 장차 교회를 이끌어나갈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라 할 수 있다. 먼저 교육지도자 장학금 제도를 신설하면 좋겠다. 장차 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지도자를 전임 사역자로 청빙해 마음껏 사역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장차 교회를 함께 세워나갈 미래 지도자들을 가정에서부터 양육해야 한다는 확신 아래 가정과 교회가 연대해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온갖 자료를 제공하는 일에 헌신하면 좋겠다. 그것은 보이는 성전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성전을 위해서도 동일하게 헌신할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아직 ‘교회당’도 없을 때 시도하는 것이 좋다. 무모해 보이는 일을 감행하자. 우리도 실천해보자. 보이는 성전 짓기에 에너지를 소진하는 시대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는 일이 미래 세대를 살리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도일 교수(장신대 기독교교육과)
[시온의 소리-김도일]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자
입력 2014-08-15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