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히딩크부터 마르베이크까지

입력 2014-08-14 02:18
네덜란드는 우리와 인연이 깊은 나라다. 우리나라에 처음 발을 디딘 네덜란드인은 얀 얀스 벨테브레(Jan Janse Weltevree)다. 그는 조선 인조 5년인 1627년 우베르케르크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태풍에 밀려 제주도 해안에 표류했다.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서양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조선에 귀화해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한 그는 훈련도감에 배속돼 무기를 제조하는 일을 담당했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직접 군인으로 전장에 뛰어들 정도로 조선을 사랑했다. 효종 4년인 1653년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했을 때 통역을 맡았고 그들을 한양으로 호송하는 임무도 짊어졌다. 이후 조선 여자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며 여생을 조선에서 마쳤다.

반면 하멜은 현종 7년인 1666년 배를 타고 일본으로 극적으로 탈출해 2년 뒤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해 로테르담에서 ‘하멜표류기’를 출간했는데 이는 조선의 문화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기도 했다. 이준 열사가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의 침략을 폭로하다가 장렬히 분사(憤死)한 곳도 바로 네덜란드였다.

한반도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생존을 위해 가야 할 길을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그래서 택한 것이 해외 진출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시골 사람은 대도시로, 대도시 사람들은 외국으로 나가는 게 수백년 동안 이어온 전통이다. 어려서부터 국제 상인의 자질을 배우고, 대학생이 되면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로 발을 넓힌다. 국민 대부분이 최소 3개 국어에 능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디에 가든 그곳 문화를 존중하고 잘 적응하는 민족이기도 하다.

이런 기질이 두드러진 분야가 축구다. 전원공격, 전원수비로 대변되는 ‘토털사커’의 본고장 네덜란드 출신의 수많은 감독들이 현재 세계 각지에서 명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끈 명장 베르크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홍명보 감독 후임으로 조만간 한국대표팀 사령탑에 앉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한국 축구 대표팀 역사에서 7명의 외국인 감독 중 5명이 네덜란드 출신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 시작점이었다. 히딩크 감독처럼 네덜란드 기질을 타고났다는 평을 듣고 있는 마르베이크 감독이 어떤 신화를 써내려갈지 주목된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