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투수는 고민이 많은 눈치였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정통파 투수였지만 번번이 사사구를 허용했다. 투구수보다 주자에 대한 견제구가 더 많았다. 돌직구를 던질 만도 한데 피해가는 볼만 던지다 보니 밀어내기 점수를 내주거나 페어 볼로 2루타를 허용하기 일쑤였다. 결국 3회 말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덕아웃에서 한번만 나가게 해주면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감독을 조르던 그가 드디어 마운드에 올라섰다. 한때 팀을 떠나 야구평론가로 외도했던 그였다. 돌직구도 서슴지 않은 그는 상대팀 타자들을 삼진이나 내야땅볼로 아웃시켜 관중들로부터 뜨거운 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침체에 빠진 홈구장은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돌파력 강한 2기 경제팀
2기 경제팀 수장으로 구원등판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처럼 특유의 돌파력을 무기로 선방을 하고 있다. “첫 단추를 잘 꿰었다”든지, “역시 실세 정치인답게 선이 굵다”는 칭찬이 들린다. 여당의 7·30재보선 압승 일등공신도 민생을 챙기려는 ‘최노믹스(최경환의 경제정책)’ 덕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세수 부족에 발목이 잡혀 경기를 끌어올릴 묘안을 찾지 못하던 현오석 경제팀과 달리 ‘경제는 심리’라며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외치자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양적완화를 세 차례나 단행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헬리콥터에 달러를 싣고 마구 뿌려야 한다고 해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듯 내년 상반기까지 기금과 정책금융 등을 동원해 41조원을 쏟아붓겠다고 공언한 그에게도 ‘헬리콥터 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대기업의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가계소득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3대 패키지 세제(근로소득증대세제, 배당소득증대세제, 기업소득환류세제)와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에 증시와 부동산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다만 이제 최노믹스에 대한 환호성을 잠시 멈추고 냉정히 따져볼 때도 됐다. 우선 41조원을 쏟아붓겠다는 기금과 정책금융이 경기 활성화로 직접 이어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는 점이다. 게다가 3대 패키지 세제 역시 정권이 바뀐 뒤에나 실행될 머나먼 얘기다. 재벌들 돈이 서민들로 흘러가 내수경기가 살아난다고 얘기하지만 애초 경기 부양을 위한 ‘시그널’에만 의미를 둔 립서비스일지 모른다. 정부 눈치를 본 기업들이 억지춘향처럼 불요불급한 곳에 투자를 할 수도 있다. 대주주들에게 높은 배당액을 안겨주면 그들이 소비를 늘리므로 윗목까지 흘러드는 낙수효과를 본다고 하지만 고소득층이 어디 지갑사정 따라 소비를 결정하는 계층인가.
오히려 경기를 타는 것은 중산·서민층이다. 물론 주식 거래액이 늘어나 주가가 뛰면 개인투자자들이 돈을 벌고 소비심리도 좋아진다. 기업들 역시 자사주 가격이 올라가면 자금 조달에 도움이 된다. 최 부총리가 노린 것 중 하나는 이런 심리였을 것이다. 문제는 심리가 무너졌을 경우다.
실적 위한 경기띄우기는 금물
기업 실적이나 가계의 실질소득에 바탕을 두지 않은 띄우기가 어떤 결말을 가져왔는지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정부가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음을 과시하기 위해 복권사업 등 무분별한 카드 정책으로 소비와 성장률을 부추긴 결과 카드빚 사태를 맞았던 경험이 불과 10년 전이다. 결국 치명상을 입는 건 주식시장 개미들과 서민들이다. 거품은 미래 경제 펀더멘털을 담보로 한 암적 존재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더라도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필수다. 임기 동안 실적 쌓기용 경기를 띄우고는 설거지는 나몰라라 하던 역대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고 경제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데스크시각-이동훈] ‘최경환號’ 성공의 조건
입력 2014-08-14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