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어머니의 이름으로

입력 2014-08-14 02:17

참 고약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월 7일 육군 28사단 포병대대 의무반에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모(20) 일병 어머니와 짧은 통화를 한 뒤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들의 처참한 죽음에 억장이 무너지고 분노와 자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어머니의 상처를 헤집어 놓은 것 같아서다. 28사단 보통검찰부가 작성한 윤 일병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읽으면서 윤 일병의 어머니가 무척 걱정됐다. 공소장이 전한 폭력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21장짜리 공소장 내용은 공포소설보다 더 끔찍했다. 기자에게도 치가 떨릴 이 일을 어머니는 어떻게 감내하고 있을까.

윤 일병의 죽음은 아들을 군에 보낸 모든 어머니들을 근심케 했다. 해병대에 입대한 아들을 둔 한 친구도 불쑥 전화해 “우리 아들, 괜찮겠지?”라고 물었다. 첫 면회에서 아들을 본 뒤 “군대 참 괜찮은 곳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던 친구다. 응석받이 아들이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충성’ 하고 인사하는 모습이 든든했다고 했다. 소대장의 세심한 배려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아들의 병영생활을 전화로 전해줬던 소대장이 “나도 모르는 내 아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더라”며 “아들이 휴가로 집에 가면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조목조목 알려줬다”며 고마워했다. 그런 친구도 이제는 병영이 마냥 불안해 보인다고 한다. 윤 일병 사망 사고가 발생한 뒤 4월 한 달간 전군(全軍)에서 실시된 부대 정밀진단에서 드러난 군내 폭력행위는 3919건이다. 드러나지 않은 가혹행위는 훨씬 많을 것이다. 어머니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수치다. 하지만 이런 수치들보다 어머니들을 더 좌절시키는 것은 군의 태도다.

군의 특성상 엄정한 군기를 위해 일부 가혹행위가 있을 수 있다. 어머니들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조직폭력배 사회 같은 폭력을 방치했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범죄행위다. 윤 일병의 경우처럼 극악하지는 않더라도 구타·가혹행위가 병영에서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는 것을 군은 알고 있었다. 군은 그간 가혹행위 근절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주장했다. 일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 군이 과연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윤 일병 사망 후 육군과 국방부 수뇌부는 관계자에 대해 엄중처벌을 요구하고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지시했다. 군 기강 확립을 위해 수뇌부 회의도 가졌고 전군에 대한 정밀진단도 했다. 사안의 심각성은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언론에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군은 가혹행위 근절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는 없었다. 처참하게 죽어간 한 병사의 죽음에 대한 애도도 물론 없었다. 뒤늦게 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재조사하고 책임소재를 찾고, 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군 수뇌부가 사과하고 대규모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를 꾸렸다. 이런 움직임이 낯설지는 않다. 이미 수차 되풀이 해와서다. 대통령이 나서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소집한 것만 이례적일 뿐이다.

불합리한 지시와 집합 얼차려, 군기교육, 암기교육 금지는 1990년대부터 ‘병 5대 금기사항’이었지만 여전히 병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05년 경기도 연천 최전방 경계소초(GP)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난 뒤에도 야전부대 병영문화 개선운동을 전개했고 인권담당 부서도 신설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이번에 군이 내놓은 대책도 거의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실천 의지다.

윤 일병 어머니는 지난 8일 용산 국방부 청사 앞에서 있었던 아들 추모식에서 “네가 한 알의 밀알로 이 땅에 썩어져서 널 통해, 너의 죽음을 통해 다시는 너와 같은 제2, 제3의 윤 일병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윤 일병 어머니의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군이 이번만은 제대로 병영문화를 개혁하기 바란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