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독립운동가 조만식(1883∼1950) 장로의 유머 얘기를 꺼냈다. ‘믿음의 거장’으로 불리는 조 장로는 개신교 민족주의자였다. ‘소통의 유머 리더십’의 저자 장광팔(62·장소팔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씨와 안지현(55·한국종합경제연구원 박사)씨. 각기 만담가와 만담보존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 선후배인 이들은 요즘 농어촌교회를 중심으로 한 만담 봉사에 열심이다. 육순이 넘은 장씨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동안이고 표정엔 미소가 가득하다. 안씨는 자그마한 체구로 자분자분 이야기했다. 유머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그런데 조만식과 유머는 좀 낯설다.
“조 장로님은 장로이면서도 예배 시간에 자주 늦어 목사님 눈에 났던 모양입니다. 몇 번 주의를 주셨는데도 주일 예배에 여지없이 늦으셨지요. 조 장로님이 어느 날 살금살금 예배당으로 들어와 신발장에 벗은 구두를 넣으려는데 그만 목사님께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이 설교 중 이를 보고 ‘그대로 서 계세요’라고 한마디 했죠. 그러자 조 장로님이 정지화면 동작 그대로 섰습니다. 구두를 신발장에 넣으려고 팔을 내민 자세였죠.”
장씨는 손동작과 몸동작을 보여 가며 이야기했다. 옆에서 안씨가 “조 장로님은 검은 두루마기에 콧수염을 한 강직한 인상인데 그분이 성경을 끼고 구두를 든 채 정지화면이 된 거지요”라고 거들었다. 그 설명에 상상력이 더해졌다.
해방 직후 평안도의 한 교회,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은 성도들, 마루 형태의 예배당 안. 한국 초기 교회 형태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유머에는 서로 섬기는 목사와 장로의 재치가 담겼다.
이 책에는 이런 따뜻한 교회용 유머가 제법 담겨 있다. 화자에 따라 얼마든지 버전 업 될 수 있다.
104쪽 ‘목사님 마음도’는 36억원짜리 로또복권에 당첨된 한 장로님 이야기. 그 장로는 목사에게 “아내(권사)가 복권 당첨 사실을 알면 졸도할 것 같은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고 지혜를 구한다.
“제가 졸도하지 않도록 잘 말씀드릴 테니 모시고 오시지요.”
장로 내외가 목사 앞에 앉자 목사가 말했다.
“권사님! 이건 만약입니다. 장로님께서 36억원 복권에 당첨되셨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권사 왈, “물론 목사님 다 드려야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사는 바로 졸도했다.
장씨가 “싱거운가요? 교회 유머가 야할(?) 수도 있습니다. 신혼부부가 목사님께 부부 간 성생활은 주 몇 회가 좋은가 하고 묻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목사님이 성경을 보며 주 2회가 적당하다고 말하죠. 부부가 성경에 그런 얘기가 있냐며 깜짝 놀랍니다. 성경에 ‘화목하라’고 한 걸 목사님이 화요일과 목요일의 ‘화목’이라고 농담한 거죠”라며 웃었다.
“유머는 티핑 포인트, 즉 미미했던 흐름이 극적인 변화로 바뀌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시골 할머니들이 앞뒤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해도 메시지가 전달되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이죠.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유머를 잘 활용하는 리더가 있다면 그야말로 화목한 공동체가 되겠지요. 생산성도 오른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도 예외가 아니라고 봐요.”
안씨의 얘기다.
두 사람은 10여년 가까이 만담보존회 활동을 통해 소외 지역 등을 대상으로 ‘만담 선교’를 펼쳐왔다. 만담 특성상 남녀가 출연하다 보니 안씨도 곧잘 만담 무대에 서곤 한다.
장씨는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만담가 장소팔(1922∼2002)의 장남이다. 아버지의 끼를 다분히 이어받은 그는 성인이 되어 교회(서울 남산교회)에 다니면서 교인을 위한 만담을 심심찮게 하곤 했다. 그리고 농촌선교활동을 갔다가 재미 삼아 아버지 흉내를 내곤 했는데 시골 나이 드신 분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본격적인 만담꾼이 됐다.
서울 충만한교회 권사인 안씨는 이 타고난 만담꾼의 상대역 고춘자 역할을 해내곤 했다. 고춘자(1922∼1994)는 장소팔과 호흡을 같이한 당대 최고의 여류 만담가이다. 만담은 코미디의 옛말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은 비하가 너무 심해요. 몸이 뚱뚱한 것과 얼굴 못생긴 것을 놀리는 개그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죠. 그 사람들이 웃기려고 고민하는 거 보면 그게 웃길 지경이에요. ‘빵 터뜨려야 한다’는 강박이죠. 그건 소통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책 출판에 뜻을 맞춘 것은 바로 이 소통 부재가 결정적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정치인에게는 유머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책 부제목이 ‘청와대에 유머담당관을 허하라’이다. 일제 강점기 풍속을 다룬 책 ‘경성에 딴스홀을 허하라’를 패러디했다.
책 서문엔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 런던 방문 시 만찬장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런던시장이 “드라마틱한 입장이네요”라고 했고 박 대통령은 퇴장하면서 “갈 때는 조용히 갈게요”라는 유머감각을 발휘했다는 내용을 유머 리더십의 긍정적 사례로 꼽았다.
그러면 성경 최고의 유머는 어느 대목이냐고 물었다. 눈을 마주친 두 사람.
“당연히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창17:15∼21)이죠. 90세인 사라가 아들을 낳는다니?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잖아요. 그 아들 이삭의 뜻은 히브리어로 ‘그가 웃었다’이니 하나님 되게 웃기지 않나요? 최고의 유머 리더십이죠.”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요즘 코미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에요”
입력 2014-08-13 0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