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본국으로 돌아와 치료받던 스페인 신부 미겔 파하레스(72)가 12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아프리카 밖에서 첫 사망자가 나오고 사망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서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례적으로 시험 단계의 치료제 사용을 전격 허가했다. 우선 미국인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들에게 투여돼 효능을 보였던 시험 단계의 치료제 지맵(Zmapp)이 서아프리카에 처음 공급된다.
스페인 보건 당국은 마드리드의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던 파하레스 신부가 이날 오전 숨졌다고 밝혔다. 라이베리아에서 50년 넘게 선교 활동을 해온 그는 현지 병원에서 에볼라출혈열 감염자 치료를 돕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 7일 특별기를 보내 그를 데려왔다. AF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병원 측을 인용해 파하레스 신부가 9일 밤 도착한 지맵을 투여받고 있었다고 전했다.
WHO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일까지 52명이 추가로 숨지면서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는 1013명이 됐고 감염자도 69명이 추가돼 1848명으로 늘었다.
같은 날 WHO는 전문가들을 소집해 의료윤리위원회를 개최한 뒤 시험 단계의 치료제 사용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WHO는 성명을 통해 “이번 발병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이 맞는다면 아직 치료나 예방에 있어 그 효과나 부작용 등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시험 단계의 치료제를 제공하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윤리위에서는 치료제의 안정성과 부작용 발생 시 책임소재 문제 등도 거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감염 희생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데다 가장 심각한 서아프리카 지역에는 치료제가 제공되지 않아 인종차별 논란까지 불거지는 상황이어서 위원회로서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사용 허가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맵 개발사인 미국의 맵바이오제약은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치료제 공급을 요청한 나이지리아와 라이베리아 의료진에게 이번 주 중으로 지맵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제약사 측은 서아프리카 지역에 가능한 충분한 양의 지맵을 공급할 방침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에볼라 백신과 치료제 개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AFP통신은 예방백신 분야에서는 영국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미국 국립 알레르기 및 전염병연구소(NIAID)와 함께 연구 중인 백신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치료제 분야에서는 3가지 항체를 혼합해 제조되는 지맵이 가장 유명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제품이 아직 완벽하게 성능이 입증된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 FDA에서 사용규제 완화 조치를 받은 캐나다산 시험 단계 치료제 TKM-에볼라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스페인서도 에볼라 감염 사망… 아프리카 外 지역 처음
입력 2014-08-13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