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청소년을 위해 국민일보가 마련한 ‘꿈나눔 캠프’가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2014년 3월 10일자 1·8·9면, 6월 11일자 1·4·5면 참조). 현재까지 세 차례 진행된 캠프 참여 인원은 20여명. 여전히 학교 밖에서 방황하는 아이도 있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씩 내딛고 있습니다. 자살 고위험군이던 민영(이하 가명·19), 오토바이를 타며 사고를 치고 다녔던 규석(18), 상습적으로 자해를 했던 민희(17·여)는 긴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가채점 해보니 평균 85점 넘었어요. 합격한 거 같아요.”
지난 6일 오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민영은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냈습니다. “아∼ 이런 결과가 나오니 기쁘고 뿌듯해요. 올해 기초를 쌓고 내년에는 수능을 봐서 대학에도 갈 겁니다. 반드시 상담교사가 될 거예요.” 휴대전화 너머의 민영은 적잖이 흥분해 있었습니다. 필요한 말만 작은 소리로 말하던 아이는 수다쟁이가 돼 있었습니다.
민영은 이날 고졸 검정고시를 치렀습니다.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니 무난히 고교 졸업 자격을 손에 쥘 듯합니다. 8개월여 노력이 결실을 본 순간이자 죽음의 공포를 완전히 떨친 날이기도 합니다.
민영은 과거 5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부모가 이혼한 뒤 대구 할머니에게 맡겨졌을 때 처음 음독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후 학교를 그만뒀고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두려워지면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죽음의 공포와 지독한 외로움, 타인에 대한 이유 없는 미움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민영은 꿈나눔 캠프에 참가한 뒤 ‘은둔형 외톨이’에서 벗어나 세상에 손을 뻗기 시작했습니다. 상담교사를 꿈꾸게 된 ‘롤 모델’도 캠프 강사였습니다. 민영에게 검정고시는 첫 도전 과제였습니다. 시험 부담감으로 한동안 완화됐던 불면증 증상도 악화됐습니다. 검정고시에 좌절하면 과거로 돌아갈까 무서웠습니다.
냉랭했던 아버지는 발버둥치는 아이에게 다시 사랑을 쏟아줬습니다. 시험 전날 긴장한 아들을 위해 막노동으로 지친 몸을 추슬러 함께 영화 ‘명량’을 보고 저녁식사도 하며 용기를 북돋워줬습니다. 시험을 치른 뒤 민영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한 듯합니다. “반신반의했어요. 할 수 있을지…. 이제는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롤 모델’을 만난 뒤 바빠진 아이들
규석은 미용기술 연마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 습관은 여전하지만 내용은 달라졌습니다. PC방 출입을 끊었습니다. 아르바이트 후 아는 미용사로부터 새벽까지 머리감기기 등 필수 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2주간 하루 2∼3시간씩 거르지 않았습니다. “노는 거 포기했어요. 돈 많이 벌어서 더 재미있게 놀래요.”
규석은 지난달 24일 본보 멘토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국내 굴지의 ‘뷰티 살롱’ 라뷰티코아 도산점의 정준 대표원장을 만났습니다. 정 대표는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억대 연봉의 헤어 디자이너로 꿈을 이룬 인물입니다. 견습생 월급 8만원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정상급 연예인들을 고객으로 관리하며 ‘슈퍼스타K’ ‘댄싱9’ 등 방송 출연자들의 헤어스타일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규석이 되고 싶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정 원장은 규석에게 “학원비 구하려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노력 끝에 서초동에서 유명해졌지만 중심 무대인 압구정동 청담동에서 인정받으려고 견습생부터 다시 시작했다”는 등의 역경 극복 스토리를 들려줬습니다. 정 원장은 규석에게 기초적인 미용기술만 익힌 뒤 이력서를 갖고 오라고 권했습니다. 규석은 ‘준비된 모습’으로 정 원장에게 이력서를 들고 갈 그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희는 가정문제, 진로문제 등으로 자해를 하던 아이였습니다. 미용 관련 고교에 진학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기 직전 꿈나눔 캠프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학교 공부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민희의 멘토로 나선 이는 라뷰티코아를 설립한 김현태 대표였습니다.
민희는 김 대표로부터 ‘학교를 그만두지 말라’ ‘독서로 지식을 축적하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아름다움으로 고객의 마음까지 ‘힐링’하려면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직업관입니다.
민희는 면담 후 메이크업 전문가로부터 화장을 받아봤습니다. 민희는 “최고 프로의 손길을 느껴보니 마음이 급해졌어요. 이 자리에 빨리 서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라고 했습니다. 민희는 “미래를 위해 학교에서 뭘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지 알게 됐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슬로 뉴스] 검정고시 보고 미용기술 연마… 꿈에 한발 다가서다
입력 2014-08-14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