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족쇄’ 고용허가제 폐지 촉구

입력 2014-08-13 00:13
“한 이주노동자가 화장실도 없는 농촌 사업장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사업주는 아무데서나 볼일을 보라고 했습니다. 한 겨울에도 밭에서 용변을 봐야 했던 이 노동자는 이직을 결심하고 고용센터를 찾아갔죠. 하지만 고용센터에서는 화장실이 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 게 고용허가제의 현실입니다.”(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윤지영 변호사)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이주민 차별·착취 제도인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4대 종단 이주·인권위원회 대표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지영 변호사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는 월급을 못 받아도, 회사에서 폭행을 당해도 고용허가제 때문에 회사를 옮길 수 없다”며 “문제점이 분명한 데도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이주·인권위원회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4대 종단 이주·인권위원회 대표들은 고용허가제 폐지를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오는 17일로 도입 10년을 맞는 고용허가제는 한 번 근무지가 정해지면 이직을 할 수 없어 ‘강제노동과 다름없다’ ‘한국인 근로자와 차별한다’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2012년 8월 고용허가제를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4대 종단 대표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탈법적 파견근로와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 받는 경우가 많다”며 “고용허가제는 더 이상 합리적인 제도가 아니라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지탄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의 비인간적 정책은 우리의 종교적 신념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며 “각 종단 신도들 및 국내외 관련 기구들과 연대해 한목소리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신교 이주·인권위원회 대표로 나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주민소위원회 위원장 김은경 목사는 “그동안 비인간적인 노동에 시달려온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들과 평등하게 일하며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