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고립된 친(親)러시아계 주민을 돕기 위해 국제적십자사(ICRC)와 공조해 인도주의 지원단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개입을 위한 명분축적용 행동이 아닌지 의심하면서 군사 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통화에서 “러시아는 ICRC 대표와 공조해 우크라이나로 인도주의 지원단을 파견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전기와 식수 공급이 재개되고 아이들이 긴급 처치를 받을 수 있길 바라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며 “인도적 지원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곡물 400t, 설탕 100t, 유아식 62t 등 식량과 약품·의료품 54t, 침낭 1만2000개 등이 모스크바에서 280여대 트럭에 실려 12일 우크라이나로 향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인도적 지원은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지원단은 러시아가 아닌 국제사회여야 하고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는 국경 검문소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ICRC는 성명을 내고 “ICRC 구호차량은 무장경호가 필요 없으며 모든 관계세력은 ICRC 요원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지난 4월부터 분리주의 움직임이 강한 동부 루간스크와 도네츠크를 완전히 포위해 군사작전을 벌이면서 1500여명의 반군과 민간인이 사망했다. 또 100만명에 달하는 주민이 전기와 식수, 연료,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EU는 러시아의 지원단 파견이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빌미로 자연스럽게 군사 개입에 나서기 위한 명분축적용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지난주 국경지역에 2만명에 불과하던 러시아 병력이 현재 4만5000명까지 늘어났다”면서 “160대의 탱크와 1360대의 무장장갑차량, 390문의 야포, 150문의 다연장포, 192대의 전투기, 137대의 헬기 등도 배치됐다”고 전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군사개입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상황이 커지자 바호주 집행위원장은 “러시아가 국경에 군대를 집결시키고 우크라이나 반군에 무기를 제공하는 데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허가 없이 러시아가 군사 개입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달 4∼6일 영국에서 열리는 나토정상회의에서 포로셴코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열어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키로 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과 전화통화를 갖고 러시아가 인도주의 지원을 빌미로 군사 개입을 할 경우 추가 제재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 지원단 파견”
입력 2014-08-13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