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전격교체’ 이라크 정국 혼미

입력 2014-08-13 00:51
이라크의 새 총리로 하이데르 알아바디 국회부의장이 지명됐지만 현직 총리인 누리 알말리키가 강력 반대하고 나서면서 이라크 정국이 더욱 혼미해지고 있다. 알아바디 지명자는 30일 이내 새 정부를 구성해 의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군부 실세들과 가까운 알말리키가 용인할지가 관건이라고 BBC 등 외신들이 12일(현지시간) 전했다.

푸아드 마숨 이라크 대통령이 11일 새 총리를 발표한 직후 알아바디 지명자는 국영방송을 통해 “우리 모두 이라크에서 테러단체를 척결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알말리키 총리도 TV연설에서 “마숨 대통령이 헌법에 위배되는 쿠데타를 자행했다”고 비난하면서 지명 무효화를 위해 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알말리키는 전날부터 대통령궁 등 바그다드 주요기관에 배치해놓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특수부대도 계속 주둔시키고 있다.

하지만 BBC는 “알아바디 지명은 미국뿐 아니라, 시아파 맹주인 이란도 사전에 용인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상황을 뒤집기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알아바디와 알말리키는 둘 다 시아파 출신이다. 게다가 알아바디는 이라크 내 다수 종족인 수니파와 쿠르드자치정부로부터도 공식적으로 지지를 받은 상태다.

알말리키는 의회 내 최대 정파 대표를 총리로 임명하게 돼 있는 헌법 규정에 따라 의회에서 세력이 가장 큰 ‘법치연합’ 대표인 자신이 총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알아바디 지명자 역시 법치연합 소속이어서 최대 정파 구성원이 총리에 임명된 것이 꼭 위헌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무엇보다 최고이슬람이라크위원회 수장 암마르 알하킴이 이끄는 알무와틴연합 등이 참여한 집권 시아파 연합체 ‘범국민연대’가 이미 알아바디 총리 지명을 지지했다. 여기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알아바디 지명자에게 직접 전화해 미국 정부의 지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미군이 이라크에서 완전 철수한 상황에서 군부를 장악한 알말리키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알말리키는 TV연설 때 군인들에게 자신이 군통수권자임을 상기시키면서 “오류가 곧 시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이라크의 정국 혼란이 가중되자 유럽연합(EU)은 급진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기 위해 회의를 열어 쿠르드자치정부군에 대한 무기지원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ABC방송 등은 미국 군사전문가들을 인용해 공습뿐 아니라 제한적인 지상군 투입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윌리엄 메이빌 중장은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주요 임무는 이라크에 있는 미국 자산과 미국 시민, 그리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펼치는 미 수송기 보호”라며 “현재 자기방어 행위를 넘어서는 공습 확대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