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들어간 대한민국 청년들이 연일 죽어나가고 있다. 윤모(20) 일병은 선임병의 엽기적인 가혹행위로 숨졌고, 이모(23) 상병과 부대 동기인 또 다른 이모(21) 상병은 나란히 목숨을 끊었다. 21세기 병사들을 품지 못하는 19세기 병영문화와 20세기 병영 환경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침묵이 강요되는 병영문화=지난 3월 전역한 이모(22)씨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훈련과 경계근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폭압적인 행태들은 참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선임병을 구타한 이유로 영창을 다녀왔다. 일과후 생활관에서 끊임없이 괴롭히는 선임병의 횡포를 참다가 결국 폭발했다. 이씨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얻어맞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명분은 군기를 잡는다는 것이었지만 개인적인 화풀이가 대부분이었다. 전 생활관원들이 불려가 창고나 보일러실 등 간부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집단으로 얻어맞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국국방연구원이 2010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병사 6.4%가 구타와 가혹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폭행을 당한 후 탈영이나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병사는 20%에 달했다.
군내 폭력은 대물림된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소위 '내리갈굼'으로 전입되는 신참이 목표가 된다. 윤 일병이 숨진 육군 28사단 포병대대 의무반도 내리갈굼이 일상화돼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까지 선임병들의 구타·가혹행위 대상은 이모(20) 일병이었다. 윤 일병이 배치되자 이 일병도 '윤 일병 때리기'에 가담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회전염현상'이라고 규정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 병폐에 동조해버리는 현상으로, 사회에서 군을 비판하던 젊은이들도 군에 들어오면 욕설과 폭력의 잘못된 병영 관습에 젖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선임병이 되면 후임병을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습관화된 폭력에 물들어 후임병을 괴롭히게 되는 경우가 해당된다.
폐쇄적이고 위압적인 병영 분위기는 범죄 방관자를 양산하고 있다. 이씨가 선임병에게 맞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간부에게 알리지 않았다. 선임병의 보복이 두려웠고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군인권센터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구타를 목격한 뒤 개선을 요구하거나 상급자에게 보고한 경우는 각각 18.2%와 12.7%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못 본 척했다.
아프거나 진찰이 필요해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한다. 꾀병이나 훈련기피로 찍힐 수도 있어서다. 2006년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의 군내 인권상황 실태 조사에 의하면 치료받고 싶다는 얘기를 못하는 병사가 20%였다.
◇무용지물 신고제도=이런 '악행'을 고발하라고 군이 마련해 놓은 제도는 무용지물이다. '소원수리' 제도가 대표적이다. 후임병이 써낸 '소원'을 가해자인 선임병이 보고 다시 불이익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복무 중 자살한 김모(22) 이병의 소속 부대에 대해 직권조사를 한 결과 소원수리 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된 것으로 파악돼 시정을 요구했다. 인권위는 "병사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자신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표현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2012년 실시한 '군복무 부적응자 인권상황 및 관리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병사 가운데 50%가 소원수리 제도는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한 병사는 "고충 상담을 하면 더 힘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고 '왕따'로 이어질 수 있어 힘들어도 전역할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병대 교육훈련관을 역임한 차동길 예비역 장군은 12일 "자율과 책임의식을 지닌 21세기 병사들에게 통제와 감시,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후진적 병영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제2의 윤 일병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좁고 낡은 병영시설=1987년 국방부가 병영시설 보완계획을 세워 병영시설을 개선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70, 80년대 지어진 구식 막사에서 생활해야 하는 병사들이 적지 않다. 윤 일병이 숨진 28사단 포병대대 의무반을 찾은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전문위원들은 "아직도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곳이 있느냐"며 낙후된 병영시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윤 일병이 생활하던 생활관은 철제 관물대 10여개 외에는 별다른 시설은 없었다. 한국교총회장인 안양옥 위원은 "논산(훈련소)은 호텔이라는 말이 실감난다"며 "전방일수록 시설이 낙후됐다는 말이 맞는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전방 생활관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80년대 지어진 건물들은 곳곳에 구멍이 나 있거나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악취가 나기 일쑤다. 20여명이 한 곳에서 주거하는 침상형 생활관은 선풍기 몇 대만 배치돼 있어 여름이면 찜질방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덥고 겨울이면 따뜻한 물을 쓸 수 없어 빨래하는 병사들의 손이 곱아들 정도다.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일부 생활관은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공간"이라며 "군내 구타와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는 데는 낙후된 생활 환경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전근대적 병영문화, 뿌리부터 바꾸자 (상)] 위압적 분위기가 침묵 강요… 폭력 목격해도 모른 척
입력 2014-08-13 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