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갖자는 우리 측 제의에 대해 만 하루가 지나도록 가타부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노동신문을 통해 우리 정부를 ‘괴뢰’라고 칭하며 대남 비방을 이어갔다. 노동신문은 12일 ‘불순한 체제통일 야망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의 경고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는 각각의 논평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과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맹비난했다.
노동신문 논조로 봐서 북한이 우리 측 제의를 아무 조건 없이 수용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달아 역제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부정적 시그널만 있는 건 아니다. 북한은 대남 비방을 계속하면서도 이달 들어 박 대통령 실명 대신 ‘남조선 집권자’로 표기하는 등 원색적 표현을 삼가고 있다. 오는 20일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조 추첨 행사와 국제 학술대회 참가 의사를 전달하는 등 긍정적 신호도 감지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이명박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바뀐 지 1년6개월이 다 되도록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1차 남북 고위급 접촉이 성사됐을 때만 해도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북한의 억지 주장으로 만남 이상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어렵사리 합의된 설날 이산가족 상봉도 일회성 행사로 끝났다. 일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5·24 대북 제재조치를 유지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런 점에서 고위급 접촉에서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 변화는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5·24조치는 경제적 측면에서 북한의 중국 의존도만 심화시켰을 뿐 대북 압박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여당에서조차 해제 주장이 나올 정도로 5·24조치는 오래전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드레스덴 선언과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류를 전면 중단시킨 5·24조치는 양립하기 어렵다. 이 모순을 그대로 놔둔 채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 찾는 격이다.
정부는 137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 제의에 이어 12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8·15 남북 공동기도회와 관련해 19명의 방북을 승인했다. 공식 표명을 안 했을 뿐이지 5·24조치의 틀을 깨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만큼 이제 북한이 화답할 차례다.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산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은 북한 당국에도 있다.
[사설] 남북 고위급 접촉 南 제의에 北 적극 응하길
입력 2014-08-13 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