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차역 플랫폼에서 경험한 일이다. 승객이 버린 빵 조각을 참새 한 마리가 열심히 쪼고 있었다. 그냥 먹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딱딱한 빵이었다. 바로 앞 벤치에 여러 사람이 앉아 있어서 다른 참새들은 겁먹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 그 참새 혼자서 위험을 무릅쓰고 빵 조각과 사투를 벌이는 것이었다.
“entrepreneurship!”
‘기업가정신’이 갑자기 떠올랐고 엉겁결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참새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필자가 잘게 부숴 던져줬다. 그때서야 멀리 있던 참새까지 날아와 같이 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독일인 노신사가 혹시 경영학 교수가 아니냐며 말을 걸었다. 그는 2차 대전의 폐허에서 부친과 함께 중소기업을 일으켜 지금도 경영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참새가 빵 조각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면서 변변한 장비 하나 없이 공장을 일궜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노신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우리는 빵 5개와 생선 2마리로 5000명 넘는 군중을 먹인 오병이어(五餠二魚)가 기업가의 미션이라는 대화까지 나눴다.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업적은 기적에 가깝다. 초등학교 졸업 최종학력으로 영어 소통이 두려웠을 법도 한데 외국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일감을 따냈다. 고도의 공학지식이 요구되는 건설 조선 자동차를 경영하면서도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 정주영 창업의 백미(白眉)는 울산 바닷가 한 모퉁이를 세계 최대 조선소로 바꿔놓은 대역사(大役事)다. 울산 해변 모래밭 사진 한 장을 들고 해외를 돌며 유조선 건조계약을 따냈고 거액의 외화 차입도 성사시켰다.
필자가 학회장을 맡았을 때 외국인 학자를 초빙해 함께 울산 현대중공업을 방문했었다. 노르웨이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미국인 학자는 어릴 적 고향마을 소형 조선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관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인력개발 및 노사관리가 어렵기로 유명한 조선소를 세계 최대로 끌어올린 비결에 대해 모두들 궁금해 했다는데 기념관에 전시된 사진 한 장이 금방 답을 알려줬다. 정주영 창업주가 건장한 청년 직원과 웃통을 벗은 채 샅바잡고 씨름하는 장면이었다.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노사 스킨십이 정주영 리더십의 승부수였음을 모두들 공감했다.
외환위기 이후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되면서 기업가정신은 크게 위축됐다. 대기업 창업주와 2세 경영인은 ‘나쁜 기업가’로 낙인 찍혔다. 웅진 윤석금과 팬택 박병엽 등 신진그룹만 ‘착한 기업가’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이들 착한 그룹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각종 경영자 상을 쓸어 담았던 STX 강덕수 샐러리맨 신화도 조선업 불경기 직격탄을 맞고 무너졌다. 도산한 기업가는 못 갚은 회사 빚 때문에 사기죄로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국제경제 동반침체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까지 발생해 내수경기가 바닥이다. 갈등은 갈수록 증폭되고 투자활성화 및 부동산 정상화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발목 잡혀 꼼짝도 못한다. 삼성전자 휴대전화 수출은 격감하고 선박 수주도 중국에 밀린다. 새로 출범한 최경환 경제팀이 경기부양책과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기금 등의 재원으로 41조원 이상 자금을 풀 계획이다. 기업이익으로 임금과 배당 지출을 늘리면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대신 이익을 그냥 보유하면 세금이 추가된다.
문제는 기업가의 의욕 상실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어떤 경제활성화 노력도 ‘기업가정신’ 없이는 소용없다. 기업가를 단속대상으로 몰아붙이는 정부규제를 과감히 혁파해 기업가의 자긍심을 되살려야 한다. 기업가는 일자리를 나눠주는 가장 고마운 ‘기부천사’라는 인식이 정착돼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 교수
[경제시평-이만우] 기업은 五餠二魚의 현장
입력 2014-08-13 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