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멋진 동물이다. 사람과는 오래도록 전쟁과 평화를 함께한 우정이 있다. 영화 ‘각설탕’에서 보듯 교감능력도 뛰어나다. 늠름한 자태와 쭉 빠진 몸매는 매혹적이다. ‘애마부인’이 괜히 나왔겠나. 말을 타는 사람은 해방감을 체험한다. 의식의 성장도 느낀다. 몽골로 말 타러 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말 산업의 미래는 밝다. 다만 딱 여기까지다.
경마는 전혀 다르다. 승마가 건전한 레저 활동인 데 비해 경마는 도박이다. 경마꾼은 말을 타는 게 아니라 달리는 말에 돈을 건다. 경마장 주변에서 순진한 유치원생들에게 말을 태워주는 것은 승마와 경마의 혼동을 유도하는 꼼수다.
도박에 대한 ‘공인효과’ 안 된다
서울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을 반대하는 농성이 200일을 넘겼다. “저희는 사람들을 도박에 빠뜨려 파탄에 이르게 한 돈으로 장학금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는 성심여고생들의 외침 이후 공감의 폭이 넓어졌다. 도박에 무심했던 사람들이 단원고 학생들을 떠올리는 여고생들의 가녀린 목소리에 깨어난 것이다.
여기에 법이 활동할 여지는 좁다. 화상경마장은 마사회법에 근거한 장외마권발매소로 탄생했고, 지금은 ‘Let’s Run CCC’라는 멋진 이름이 붙여졌다. 여기서 CCC는 ‘대학생선교회’가 아니라 ‘Culture, Convenience, Center’의 약자다. 지역주민과의 문화적 공감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전국에 30개소가 있다.
마사회의 주장은 달콤하다. CCC는 경마일(금토일)은 경마 팬에게 제공되지만 비경마일(월∼목)은 문화센터로 개방한다. CCC마다 연간 수천만원을 지역에 기부하며, 장학금을 내놓는다. 레저세 납부로 지방재정을 튼튼하게 하고, 필요한 인력을 주민 중심으로 채용하므로 고용에도 도움이 된다.
이 돈은 당연히 도박장에서 나온다. 누군가 희생의 결과다. 우리나라의 도박 중독자 유병률은 7.2%에 이른다. 20세 이상 성인 중 약 265만명에 해당한다. 외국에 비해 2∼3배 높다. 가족까지 합치면 1400만명이 도박으로 고통받는다. 국민의 3분의 1이 도박 피해자라는 계산이다. 사행산업의 확산을 거부하는 이유는 이처럼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다.
여기에는 돈에 눈먼 정부의 책임이 있다. 경마장은 물론 카지노와 경정 경륜 등 사행산업의 판을 키우니 도박공화국으로 전락했다. 사후약방문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대표적인 게 도박을 알코올 약물 인터넷게임과 묶어 4대 중독으로 분류한 것이다. 도박은 개인의 문제 외에 가족 전체의 위기를 몰고 오는 심각한 사안인데도 여타 중독자처럼 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안이하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도심의 첨단 건물에 경마장을 허용한다고? 지금까지 쭉 해왔는데 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 테지만 이는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업지구 혹은 주거지구, 학교로부터 200m냐 235m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번 허용하면 ‘공인효과’와 파급력은 무시무시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스포츠토토다. 주택복권에서 로또로 넘어올 때까지만 해도 순수 복권의 형태를 유지하다가 스포츠토토에 이르러 온라인 환경과 결합하면서 순식간에 불법 도박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정부가 운영하는 합법 사이트가 있으니 온라인에서 유사한 이름의 불법 사이트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배당률이 높아 철모르는 청소년들이 부나비처럼 달려든다.
사행산업 보는 눈 달라져야
용산 화상경마장 사태를 계기로 사행산업을 보는 정부의 눈이 달라져야 한다. 야금야금 곳곳에 도박장을 만들면 돈을 벌지는 몰라도 국민정신을 갉아먹는다. 도박산업을 권장하는 것은 아편장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신이 썩으면 개인과 가정, 나라가 그냥 주저앉는다. 아직도 경마가 건전한 레저라고 믿는다면 당장 안국동 서울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로 가보라. 밤마다 도박 중독자와 가족들이 피눈물을 쏟고 있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청사초롱-손수호] 화상경마장이 레저시설?
입력 2014-08-13 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