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 빛이 철저히 차단된 암흑의 공간. 오감 가운데 시각 기능은 무용지물이다. 손으로 더듬고(촉각), 냄새를 맡으며(후각), 소리를 듣고(청각), 맛을 보며(미각) 미로를 빠져나가야 한다. 중간 중간에 주어지는 미션은 협동심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서울 종로구 인사길 착시미술 테마파크 ‘박물관은 살아있다’에 지난 1일 오픈한 체험 프로그램 ‘다크룸 에피소드Ⅰ’이 인기다.
국내 최초의 상설 다크룸 체험 코너로 매일 낮 12시10분부터 오후 6시50분까지 25분 간격으로 17회 운영된다. ‘불을 끄고 감각을 켜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회당 최소 4명부터 최대 10명까지 입장할 수 있다. 평일에도 관람객들로 북적거리고 주말에는 매진사례를 이룬다. 7개 코너의 체험시간은 70분가량. 대부분 가족 단위 또는 연인 관객들이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뭘까.
일요일인 10일 오후 1시 이곳을 체험했다. 입장에 앞서 작전룸에서 각 코너의 특징과 미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일행 가운데 리더를 뽑았다. 나이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리더가 됐다. 신발은 필요 없다. 안경과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다. 소지품을 모두 개인사물함에 보관하고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만나는 공간은 미로룸. 벽면을 더듬고 바닥에 깔린 스펀지 등을 밟으며 길을 찾아야 한다. 잘못하면 같은 길을 계속 빙빙 돌게 된다.
미로룸을 빠져나가면 미션룸을 만나게 된다. 첫째 미션은 벽에 붙어있는 알파벳을 찾아 ‘I LOVE YOU’ 등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영어 알파벳 ‘O’와 한글 자음 ‘ㅇ’이 헷갈리고 ‘L’과 ‘ㄴ’이 혼동되는 등 미션 완수가 쉽지는 않다. 두 번째 미션은 바닥에 깔려 있는 5만원, 1만원, 1000원권 지폐와 100원, 10원짜리 동전 가운데 7만7770원을 모으는 것이다.
미션의 하이라이트는 수갑 채우기. 커플끼리 가위바위보를 해 지는 사람에게 수갑을 채운다. 이긴 사람은 바닥 어딘가에 놓여있는 열쇠를 찾아 수갑을 풀어줘야 한다. 시간 내에 풀지 못하면 끝까지 수갑을 차고 있어야 한다. 어둠 속에서 하는 가위바위보여서 자신이 낸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얘기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진실게임이다. 댄스 춤 미션까지 주어진 시간은 20분.
모든 미션을 마치고 출구를 찾으면 다함께 함성을 질러야 한다. 소리가 95데시벨 이상 되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울퉁불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나오는 터널의 길을 지나 커플룸에 도착했다. 커플룸에서는 연인에게 편지 쓰기, 다정스런 포즈 취하기, 실에 구슬을 꿰어 팔찌 만들어 주기 등 다양한 미션이 주어진다. 커플들의 모습은 사진으로 촬영돼 원하는 경우 이메일을 통해 보내준다.
커피향과 달콤한 꽃내음이 나는 향기의 길을 거쳐 도착하는 마지막 코스 감각의 룸에서는 각자 체험 소감을 밝히고 선물 뽑기가 진행됐다. 지방과 서울에서 각각 직장을 다니며 주말 데이트를 즐긴다는 한 커플은 “얼굴도 보지 못하고 휴대전화로 목소리만 듣는 시간이 많은데 이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4인조 한 가족은 “식구끼리 대화시간도 없어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체험을 통해 결속력을 다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관람객들은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이해하고,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다”며 “빛의 소중함을 느끼며 더위도 피하고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체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홈페이지(darkroomepisode.com)를 통해 예매할 수 있고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1인 입장료는 1만9000원. ‘박물관은 살아있다’와 함께 관람할 경우 2만5000원이다(1544-8506).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빛 사라지니, 감각이 살아나다
입력 2014-08-13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