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내란음모 무죄] “내란실행 구체적 합의 없고 증거부족”

입력 2014-08-12 01:12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11일 오후 서울 서울고등법원 앞 풍경. 통진당 당원들(왼쪽 사진)은 “이석기 의원 석방”을,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석기 사형”을 각각 외치고 있다.곽경근 선임기자
항소심 재판부는 통합진보당 이석기(52) 의원의 내란선동과 내란음모 혐의를 나눠 판단했다. 이 의원이 2013년 5월 회합에서 체제 전복을 목표로 참가자들을 선동해 호응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내란실행으로 이어지는 합의까지 도출하지는 못했다는 게 법원의 논리다. 쟁점이 됐던 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내란실행 합의 없다면 내란음모 성립 안돼=항소심 재판부가 내란선동에 비해 내란음모를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란선동의 경우 내란을 실행시킬 목적으로 선동행위를 하고, 선동을 당하는 상대방이 내란범죄를 결의·실행할 개연성만 인정되면 된다. 재판부는 이 의원이 회합에서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위해 주요기간시설 파괴를 포함한 물질적 준비방안을 마련하라'는 취지로 발언했고, 회합 참석자들이 이에 적극 호응한 점은 내란범죄로 이어질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그러나 내란을 음모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이민걸)는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려면 2인 이상이 '내란범죄 실행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내란행위를 구성하는 매우 세세한 내용까지 특정해 합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란의 시기, 대상, 수단 및 방법, 역할분담 등의 윤곽 정도는 특정할 수 있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 의원을 비롯한 6명의 피고인들이 한반도 내 전쟁 발발 시 체제전복을 위한 방법을 논의했지만 구체적 방법을 '합의'하지는 않았다고 봤다.

◇RO 실체도 인정 안돼=재판부는 RO의 실체도 엄격하게 판단했다. 검찰과 1심 재판부는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고, 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RO가 실재한다고 판단했다. RO에 대해 진술한 내부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 RO는 이 의원을 총책으로 하는 조직체계를 갖추고 일정한 규율과 가입절차를 가진 단체다.

항소심 재판부는 RO의 존재를 고발한 제보자의 진술은 신빙성은 인정되지만 이는 본인이 직접 경험한 소모임 활동 등에 국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외 조직체계나 구성원 등에 관한 것은 제보자의 추측성 진술에 불과하며 이를 뒷받침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 의원을 정점으로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특정한 집단은 존재하며, 내란음모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감형에도 표정 굳은 이 의원=이 의원은 내란선동 혐의가 인정되던 순간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빛에는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이어 내란음모 혐의는 없다는 재판부의 언급이 나올 때는 다소 안도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러나 곧바로 재판부의 질타가 이어지면서 이 의원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 재판부는 "내란음모가 무죄가 된 것은 증거 부족으로 인한 것이지 피고인들 행위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한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며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가장 중요한 혐의였던 내란음모에 무죄가 나왔는데도 중형을 선고한 것이다. 이 의원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려 굳은 표정으로 방청석을 쳐다보았다. 앞서 이 의원은 검은색 정장에 노타이 차림으로 법정에 들어설 때만 해도 지지자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하는 여유를 보였다.

정현수 유성열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