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휠체어경사로·승강기 겉은 번지르르 안전없는 탈의·샤워실 속은 지뢰밭

입력 2014-08-12 00:14
11일 서울 노원구의 한 구민체육관 샤워실에 샤워기가 빽빽이 설치돼 있지만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안전봉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체육관의 탈의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장애인을 배려한 손잡이가 없었다.
지체장애 1급 이형숙(48·여)씨는 지난 6월 10일 부푼 가슴을 안고 경기도 김포의 한 스포츠센터를 찾았다. 수영 프로그램 첫 수업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수영은 이씨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난 2월과 5월 두 차례 스포츠센터를 미리 방문해 편의 제공도 부탁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선 순간 이씨는 막막함과 마주해야 했다. 탈의실엔 이씨가 몸을 의지할 안전봉은커녕 앉아서 옷을 갈아입을 의자조차 없었다. 샤워실은 바닥에 물기가 많아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이날 이씨는 수영장 직원과 강사의 부축을 받아 겨우 첫날 프로그램을 마쳤다.

이씨는 11일 “탈의실과 샤워실에 의자를 배치하고 안전봉을 설치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도 자주 요청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민원이 쏟아지자 최근에야 비로소 이 스포츠센터에 장애인용 탈의실과 샤워실 안전봉이 설치됐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에게는 벽이 높은 공공·체육시설이 많다. 탈의·샤워실에 전용 공간이나 안전장치가 없어 장애인이 운동을 하러 가면 위험천만한 장면이 수시로 연출된다. 생활체육을 즐기는 장애인이 5년 새 배 가까이 증가한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오전 서울의 한 구민체육센터 입구엔 휠체어를 탄 사람도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층간 이동이 용이하도록 10인승 이상의 승강기도 설치됐다. 겉으로 보기엔 ‘충분한’ 시설이지만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폭 1.2m 정도의 탈의실 입구로 들어서면 장판이 깔린 바닥에 수건과 플라스틱 바구니가 널려 있었다. 장애인이 몸을 지탱할 안전봉이나 의자는 보이지 않았다. 높이 3㎝의 문턱을 넘어 들어선 샤워실 내에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없는 고정형 입식 샤워기만 있었다. 바닥은 미끄럼방지 기능이 없는 일반 타일인 데다 응급 상황을 위한 비상용 벨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센터 관계자는 “장애인의 경우 보호자와 동반 운동이 가능하다”며 “그 이상의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공공건물·공중이용시설의 경우 반드시 장애인용 욕실 1곳과 샤워·탈의실 1개 동 이상을 설치해야 한다. 또 인구 30만명이 넘는 지자체가 설치한 체육시설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제공·감독할 의무가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13년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욕실과 샤워·탈의실 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은 각각 24.6%와 32.7%에 그쳤다. 이는 2008년 각 78.3%, 84.4%보다 급감한 수치다. 한국장애인개발원 관계자는 “최근 각종 사회복지시설에서 에어로빅 등 운동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욕실·샤워실 등을 대거 만든 반면 장애인 편의장치는 설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3년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를 보면 생활체육 실행자 비율은 2008년 6.3%에서 2013년 12.3%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장애인도 50.4%가 ‘운동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글·사진=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