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통치 에르도안 “10년 더”

입력 2014-08-12 00:36
지난 11년간 터키를 통치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10일(현지시간) 처음으로 실시된 대통령 직선 투표에서 예상대로 과반을 득표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당선으로 에르도안 총리는 경우에 따라 10년을 더 집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꾸준한 경제성장이 승리 요인으로 꼽히는 상황에서 정교분리 원칙을 허무는 잇따른 정책 추진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0년 추가 집권 기반 마련=터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에르도안 후보가 52%를 얻어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양대 야당 공화인민당(CHP)과 민족주의행동당(MHP)이 공동 추대한 에크멜레딘 이흐산오울루 후보가 38.3%, 제3야당인 쿠르드계 인민민주당(HDP)의 셀라하틴 데미르타시 후보는 9.7%를 얻었다.

에르도안 총리는 당선 확정 뒤 “우리는 한 시대를 닫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며 “국민이 다시 한번 승리했다”고 말했다. 취임식은 28일 열리며 그 전에 총리직에서 사퇴할 예정이다.

에르도안 총리의 대통령 당선에 따라 터키의 정치제도도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뀔 전망이다. 의원내각제인 터키는 2007년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해 1차례 연임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총리가 여전히 모든 행정에 관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고, 국회에 책임을 지는 내각책임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에르도안 총리는 대선 전부터 대통령제로 전환을 위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 그는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헌법 개정을 최우선 의제로 삼겠다”고 말해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총리를 하다 대통령이 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빗대 에르도안 총리를 ‘터키의 푸틴’이라고 비꼬고 있다.

◇정교(政敎)분리 정책 약화 우려=에르도안 총리가 장기 집권했음에도 무난하게 승리한 것은 집권 뒤 지금까지 연평균 5%에 달하는 경제성장을 이룬 게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꾸준한 경제성장에 따른 물가안정으로 주식과 채권시장에 외국인 자금 780억 달러를 유치하기도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에르도안 총리가 터키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23년까지 터키를 현재 세계 17위권의 경제국에서 국내총생산(GDP) 82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만든다는 청사진을 유권자에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에르도안 총리의 대통령 당선으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헌법상 ‘정교분리’가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옛 오스만제국 황제인 술탄에 비유되기도 하는 그는 지난해 여성 공직자의 이슬람식 두건(히잡) 착용 금지를 폐지해 반발을 산 바 있다.

특히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언론과 사법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등 1인 권력 집중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동 전문 분석가인 카드리 규르셀은 “에르도안 총리의 영향력 밖에 있는 기관은 헌법재판소와 중앙은행뿐”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