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1년 11월 독립적 국가기구로 설립됐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에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한다’고 적혀 있다. 인권위는 군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건을 직권조사할 수 있는 유일한 외부 기관이기도 하다.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다. 하지만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집단폭행 사망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인권위 역할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윤 일병의 지인은 지난 4월 7일 “윤 일병의 몸과 다리에 선명한 상처와 피멍 자국이 있어 조사를 요청한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같은 달 14∼15일 현장조사까지 벌여 구타와 가혹행위를 확인했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기소가 이뤄졌고 이후 진정인이 진정을 취하해 사건이 ‘조사 중 해결’된 것으로 보고 각하 처분했다.
인권위가 해결했다는 윤 일병 사건은 4개월 후에야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진상이 만천하에 알려져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확산되자 인권위는 지난 7일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뒷북도 한참 늦었다. 인권위가 당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직권으로 조사했더라면 윤 일병 사건의 진실을 일찍 밝혀낼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권위가 군 인권침해 사건을 얼마나 안이하게 보고 있느냐는 통계 수치에서도 나타난다. 인권위는 최근 5년간 군 인권침해 진정 1177건 중 75%가량(875건)을 각하 처리했다. 진정은 2009년 78건에서 작년 165건으로 배 늘었지만 매년 인용률은 3∼6%에 머물렀다. 이처럼 인용률이 극히 저조하고 각하율이 높은 것은 인권위가 군 사건을 대할 때 폐쇄적인 병영문화에다 군의 조직적인 회유 등으로 인해 진정을 포기하는 특성을 너무 간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군은 내부 면담과 소원수리, 국방헬프콜 등 소통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역설하고 있으나 이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윤 일병 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여기에 국방부는 민간 전화상담센터 이용을 금지하는 지침까지 내린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윤 일병처럼 죽을 지경에 이르러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인권위가 군 인권침해 사건에 더욱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엔 고문방지협약 등은 폐쇄적인 환경에 처한 진정인 스스로 권리 구제를 포기할 수 있으니 인권기구가 권한을 최대한 발동하는 등 특별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권위가 제 역할을 했다면 괴롭힘을 당할 경우에 대비해 가족끼리 정했다는 ‘여기 천국 같다’라는 암호(暗號)가 왜 필요하겠는가. 인권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사설] 국가인권위, 군 인권엔 소홀했던 것 아닌가
입력 2014-08-12 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