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외교 “日, 과거사에 진정성 보여라”

입력 2014-08-11 05:07
아시아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뒷줄 빨간색 미얀마 전통의상)이 9일(현지시간) 미얀마 네피도 국제컨벤션센터 제이드홀에서 열린 갈라 디너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다 이수용 북한 외무상과 어색한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미얀마를 방문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9일(현지시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갖고 “일본이 과거사나 역사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세를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한·일 간 얽힌 실타래가 풀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지난해 ARF 이후 11개월 만에 열린 것이지만 각자의 입장만 주고받았을 뿐 과거사 해법을 위한 진전된 논의나 입장표명은 없었다. 그만큼 역사 인식의 벽이 높다는 것으로 양국 관계 회복에 앞으로도 꽤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상회담도 조율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장관은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개최된 회담에서 “지난 1년간 한·일 관계는 좋은 소식보다는 그렇지 못한 소식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지도부 인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역사인식 문제, 고노(河野) 담화 검증 강행, 방위백서 발표 등으로 양국 관계가 크게 손상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가 어두운 터널을 뚫고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일본 지도자들이 지혜를 발휘해 달라”고 당부했다.

윤 장관은 특히 “양국 관계 개선의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이라면서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 입장을 주목하며 조속한 시일 내 그런 입장이 가시적 조치로 나타나길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기시다 외무상은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원론적 입장만 나타냈다. 또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존의) 국장급 협의 채널을 잘 살려 나가자”고만 답했다.

두 사람은 10일에는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과 3자회담을 갖고 북한 미사일과 핵 문제 공조 방안을 협의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3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려를 공히 표명했다”면서 “미사일 발사와 같은 저강도 도발에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ARF 회의를 마친 뒤 채택된 의장성명에는 윤 장관의 요구로 북한 비핵화의 시급성과 함께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4차 핵실험 위협에 대한 우려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이수용 외무상은 회의에서 “우리가 핵억제력을 보유한 것은 미국의 끊임없는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 공갈에 시달리다 못해 부득불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결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윤 장관은 9일 밤 열린 ARF 환영 만찬에서 이 외무상과 조우했다. 윤 장관은 이 외무상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며 “만나서 반갑다”고 말했다. 앞서 이 외무상을 수행해 회의에 참석한 최명남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남북 간 접촉 가능성에 대해 “지금 만나 얘기할 일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무상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이날 오후 늦게 회담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핵 문제 및 6자회담 재개 사안과 함께 최고지도자 방문 의제도 거론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무상은 왕 부장과 만나기 직전 기시다 일본 외무상과도 별도 회동을 가졌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