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걷잡을 수 없게 된 건 지난 4월 7일이었다. 28사단 윤모(20) 일병 폭행사망 사건 주범 이모(25) 병장의 군 헌병대 진술서에 따르면 윤 일병은 이날 오후 4시쯤 잇따른 가혹행위 끝에 쓰러진 뒤 이내 호흡과 맥박이 멎었다. 윤 일병이 쓰러지자 겁이 덜컥 난 이 병장은 "일어나라"고 소리친 뒤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악행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대 인근 연천군보건의료원으로 옮기는 동안 산소 투여 등 응급조치를 실시했다. 하지만 윤 일병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군은 윤 일병이 가혹행위 직후 '심정지' 상태에서 병원에 실려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병장 진술에 따르면 사실상 현장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어 군의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의혹과 함께 초동대처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병장은 2012년 9월 입대 직후 신병교육대 설문조사에서 "불의의 사고가 없도록 군 생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썼지만 불과 2년 새 '악마'가 됐다. 그 이면에는 이 병장 개인의 문제와는 별도로 후임에 대한 잔인한 가혹행위가 대물림됐던 해당 부대의 악행이 있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불의의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군 생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머니가 걱정하실 일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0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이 병장은 입대 직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만약 군대에서 불의의 사고가 나서 부모에게 연락을 취해야 한다면'이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던 이 병장의 입대 초 각오는 산산조각났다.
2012년 11월 A포병대대로 전입한 이 병장의 군 생활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집안사정이 어려워져 3년간 직장생활을 하느라 또래보다 입대가 늦었던 탓에 선임들로부터 "나이 처먹고 그것 밖에 못하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손가락을 다친 채로 제설작업에 투입됐을 땐 작업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며 선임들이 온갖 욕설과 구타를 가했다.
견디다 못한 이 병장이 '이등병 선진병영 캠프' 시간에 구타 사실을 신고했지만 오히려 부대에 알려져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비밀로 신고를 한다 하더라도 폐쇄적인 구조상 신고 당한 본인부터 누가 신고했는지 한 번에 유추가 가능해서다. 부대에선 오랜 시간 함께한 선임의 가혹행위보다 갓 들어온 신병의 신고를 못마땅하게 받아들였다. 이 병장은 결국 다른 부대로 전출됐다.
이 병장은 가해자로 돌변했다. 보상심리가 작용하면서 폭력의 대물림이 이어졌다.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도 모른 채 '자신이 받아왔으니까 너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폭력의 강도는 더 세졌고 처음에 갖고 있던 죄의식도 사라졌다. 조은경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이 받았던 피해에 대한 이미지가 내면화돼서 오히려 가해 행동이 정당화되기도 한다"며 "자신이 피해자일 때 받았던 억눌린 마음이 어떤 기회에 힘을 갖게 되면 더 강하게 다른 사람에게 표출된다. 군대폭력 대물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병장은 뒤늦게 '윤 일병을 보듬어줄걸' '좀 더 잘해줄걸' 같은 말들로 수백장의 반성문을 채우고 있다고 한다. 이 병장의 어머니는 며칠 전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군 수사 당국은 이 병장 등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단독] 윤일병에 심폐소생술 했지만 폭행 현장서 사망 가능성 있어
입력 2014-08-11 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