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도 ‘이순신 신드롬’

입력 2014-08-11 03:10
영화 ‘명량’을 보려는 관객들이 10일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영화표를 사고 있다. 개봉 12일 만에 1000만 입장관객을 돌파한 명량 열풍은 정치권에도 거세게 불고 있다.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이 잇따라 이 영화를 관람하며 이순신 장군 후광효과 마케팅에 나섰다. 김지훈 기자

영화 ‘명량’ 열풍이 정치권에도 거세다. 절망 속에서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기적을 일궈 낸 ‘이순신 장군 리더십’이 국민의 공감을 받자 정치인들도 후광효과 마케팅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여야 의원들은 줄지어 영화를 관람하고, ‘충의(忠義)’ ‘백의종군(白衣從軍)’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위민정신(爲民精神)’ 등 충무공의 어록을 끌어다 쓰는 데 여념이 없다.

여권의 명량 신드롬은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영화 관람이 도화선이 됐다.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도 지난 9일 박 대통령이 관람한 여의도CGV에서 출입기자들과 함께 명량을 봤다. 김무성 대표은 오는 13일 관람을 예고했다. 김 대표는 지난 7·14전당대회 당시 자신의 별명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제목으로 ‘명량’ 포스터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여권은 국가적 위기를 국론결집으로 돌파한 위민정신 리더십에 주로 포거스를 맞추고 있다. 이 최고위원은 영화 관람 후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정치인들이 국가와 국민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풀어 나가는 지혜를 얻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재오 의원은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충무공이 갖는 역사적 무게가 그 시대적 배경과 잘 조화됐다”고 평가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이순신 장군처럼 늘 백의종군하고 국민에게 도리를 다한다는 많은 부담감을 느낀다”고 했다.

야당은 7·30재보선 패배 이후 당이 위기에 빠지자 ‘사즉생(死卽生)’에 주로 감정을 이입하는 형국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의원총회에서 “촛불 밝히고 혼자 앉아 나랏일 생각에 이르니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렀다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심정도…, 모두 우리가 이겨내야 할 시련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전병헌 전 원내대표도 지난 5일 자신의 블로그에 “명량을 보고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 생즉사’를 말한다. 우리는 충무공에게서 죽어서 이기는 혁명적 개혁을 배워야 한다”는 평을 남겼다.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재창당 수준의 개혁을 이뤄내야만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절박함의 표현이었다.

한국외대 이정희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의 흥행 레이스는 지도층의 총체적 리더십 부재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국민들이 충무공을 통해 위로받고 희망을 찾아보려는 현상”이라 분석했다. 이어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각계의 리더들이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