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딸 살해 누명 ‘악몽의 25년’… 재미교포 이한탁씨 ‘종신형 무효화’ 판결 받아

입력 2014-08-11 03:37
불을 질러 친딸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미교포 이한탁(79)씨가 25년 만에 무죄 석방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AP통신 등 미국 언론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씨에게 1989년 여름은 끔찍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그해 7월 29일 새벽 미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 스트라우드 타운십에 있는 한인교회 소유의 수양관에서 발생한 화재가 그의 인생을 산산조각 냈다. 당시 우울증을 앓던 큰딸 지연(20)씨 치료차 함께 머문 수양관에서 화재로 지연씨가 불에 타 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황망함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씨는 딸을 살해한 방화범이 돼 있었다.

미 검찰은 여러 화재전문가를 증인으로 내세워 이씨가 다량의 발화성 물질을 건물 내부에 뿌려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또 이씨가 잠옷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던 점, 옷에 발화 물질이 묻어 있던 점, 딸이 죽었는데도 무표정이었다는 점 등을 내세워 범인으로 몰아갔다.

이씨 측 로버트 로젠블룸 변호사는 “이씨가 불을 지른 것이 아니라 우울증을 앓던 지연씨가 자살을 위해 불을 지른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배심원은 검찰 측의 손을 들어 유죄 평결을 내렸다. 사건의 ‘진실’이었던 누전 등에 의한 화재 가능성은 배제된 채 재판의 초점이 ‘누가 불을 질렀느냐’에 맞춰진 게 잘못이었다.

이씨는 이후 4차례나 변호사를 바꿔가며 누전 등에 의한 사고라고 항소와 재심을 요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그러다 이씨의 피터 골드버거 변호사가 뉴욕시소방국 화재수사관 출신인 존 렌티니 박사의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2012년 제3순회항소법원이 “이씨의 옷에 묻은 발화 물질이 모두 다른 점 등 당시 검찰 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는 렌티니 박사의 주장에 대해 하급법원에 ‘증거심리’를 명령한 것이다. 2년 뒤인 지난 5월 열린 증거심리에서 검찰은 렌티니 박사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의 과학수사기법이 정확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를 토대로 미 펜실베이니아주 연방중부지방법원 윌리엄 닐런 판사는 8일 이씨에게 내려진 방화·살해 혐의에 대한 유죄 평결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무효화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골드버그 변호사는 다음주 이씨에 대한 보석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변이 없는 한 이씨는 4반세기 만에 누명을 벗고 올해 안에 출소할 것으로 보인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