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야당의 푸른 깃발 2년

입력 2014-08-11 03:18

거의 모든 국가에서 보수정당을 대표하는 색깔은 푸른색이고, 진보정당을 상징하는 색깔은 붉은색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012년 19대 총선을 계기로 이 색깔의 전쟁은 완전히 반대로 바뀌었다. 보수여당이 붉은색, 진보야당이 푸른색. 선거유세에 나온 보수 정치인들은 붉은 머플러를 두르고 경제성장과 정치·사회 안정을 주장했다. 진보 정치인들은 파란색 점퍼를 입고 진보적 공약들을 설파했다.

그때 먼저 깃발을 바꾼 쪽은 보수여당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30여년간 당 상징 색으로 쓰였던 파란색을 버리고 선홍빛 당기를 올렸다. 당명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당기와 당명 변경에만 그치지 않았다. 우리 정치에서 가장 왼쪽을 차지했던 진보정당의 공약들을 보수여당의 정강정책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그렇게도 반대했던 경제민주화와 기초연금, 보편적 복지 같은 정책들이 총선과 대선의 공약으로 둔갑했다. 박 대통령과 보수여당은 승리했다. 박 대통령이 바꿨던 당의 깃발 색깔은 그저 색상 변경에만 그치지 않았던 셈이다.

당시의 통합민주당은 새누리당이 색을 바꾸자 엉겁결에 깃발을 푸르게 칠했다.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결심했다기보다는 저쪽이 바꾸니까 덩달아 따라한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해 2012년 두 번의 큰 선거에서 모두 참패했다. 색깔을 바꿨지만, 나머지 다른 어떤 것은 제대로 바뀌지 않았다. 정책도, 여당과의 경쟁 방법도, 당내 세력들의 이전투구 양상도 그대로였다.

통합민주당은 지난 2월 안철수 의원 측 신당과 합당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됐다. 역시 당 깃발은 푸른색이었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를 선호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겠다면서 안 의원을 공동대표로 끌어들였지만, 이때도 그들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안 의원의 ‘새 정치’는 당내에서 “뭐가 새 정치냐”는 조롱을 받았고, 그가 데려온 새로운 인맥들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들은 이후 두 번의 큰 선거에서 여당에 패했다.

한마디로 푸른 깃발을 내세운 야당은 지난 2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을 못 썼다. 지난 7·30재보선이 끝났을 즈음에는 야당 내부에서 “정말 이래서는 절대로 집권할 수 없는 세력이 돼버릴 것”이라는 위기의 목소리가 나왔다. 변신해야 한다는 요구와 주장도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그러나 10여일이 지나자 새정치연합이 보이는 행태는 ‘도로 7·30재보선 이전’이다. 당내 제 세력은 자기네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뽑은 당 대표격 정치인에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 리더의 지도력에 따를 의사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저 지금까지 이 당이 굴러온 관성 그대로, 앞으로도 쭉 계속하리라는 듯한 행태만 보일 뿐이다. 선거에서 연전연패를 하면서도, “우리 잘못을 곰곰이 따져 고치자”는 반성보다는 “잘못은 했지만, 시기가 안 좋았을 뿐”이란 자기 연민에 더 집착하는 듯도 하다.

1994년 영국 노동당은 검붉은 장밋빛 붉은 당기를 분홍빛이 감도는 색깔로 바꿨다. 영국 국영 방송사인 BBC를 통해 생중계된 전당대회에는 당수로 선출된 토니 블레어의 ‘경직된 좌파 근성을 바꾸자’는 연설에 “말도 안 된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당원들이 비쳤다. 3년 뒤 그들은 보수당 20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집권했다. 어떤 당원도 블레어의 총리 입성을 반대하지 않았다. 아니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우리 야당에서도 이런 변신을 보고 싶다. 시대가 변하면 정치도 변해야 하고, 변하는 시대의 방향을 정치가 올곧게 탐침해야 하니까 말이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