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英서 분리독립 307년 만에 이룰까… 9월 18일 주민투표에 관심 집중

입력 2014-08-12 00:59

지난 5일 오후 8시(현지시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왕립예술대학 강당. 350명의 청중 앞에 알렉스 새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겸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와 정당연합체 '베터 투게더(Better Together)'의 알리스테어 달링 대표가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은 다음 달 18일 실시되는 스코틀랜드의 분립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한 달여 앞두고 찬성과 반대를 주도하는 두 진영 대표 자격으로 첫 TV '맞짱' 토론을 벌였다. 90분간 진행된 토론은 TV로 스코틀랜드 전역에 중계됐으며 스코틀랜드 지역 외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한 생각을 놓고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졌다. 새먼드 대표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다시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스코틀랜드가 더 강해지길 원하며 독립에 반대하는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달링 대표는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토론이 끝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6%대 44%로 달링 대표가 더 설득력 있게 토론을 이끌어갔다고 전했다. 독립 투표를 놓고 맞짱 토론을 벌일 만큼 스코틀랜드는 왜 영국에서 떨어져 나오길 원하는 것일까.



307년의 꿈 이뤄질까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투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국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의 왕국이 연합된 나라다. 앵글로색슨족이 중심인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이 뼈대다. 이들은 수백년간 전쟁을 이어왔다. 그런데 1603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영국 국왕에 즉위하면서 두 나라는 연합국가 형태를 띠게 됐다. 이후 1707년 5월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합병됐다.

두 나라가 합쳐지긴 했지만 현재도 고령의 스코틀랜드인들은 여전히 영어가 아닌 토속어 게일어를 사용할 정도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는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끊임없이 독립을 추구해 왔다.

결국 영국은 1997년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 대해 제한적인 지방자치권을 허용했다. 그리고 2012년 10월 스코틀랜드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배넉번 전투 700주년을 맞이하는 2014년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키로 합의했다. 307년 만에 분리독립의 꿈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공식 선거운동은 5월 30일부터 16주간 펼쳐지고 있다. 투표는 스코틀랜드 주민만을 대상으로 치러지며 투표 연령은 참여자 확대를 위해 16세로 낮췄다. 투표권은 스코틀랜드 거주민에게는 출생지와 관계없이 주어지지만,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다른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투표할 수 없다. 투표는 ‘스코틀랜드가 영국 연방에서 분리독립해야 하는가’라는 단일 문항에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표기하는 형식이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분리독립 투표에서 과반의 찬성을 이끌어낼 경우 2016년 4월 정식 독립을 선포하고 새 헌법 제정에도 착수한다는 일정까지 제시했다.




독립 후 경제 호전 여부가 핵심


독립 찬성을 주도하는 쪽은 민족주의 성향의 SNP다. 반면 반대 진영은 영국 중앙정부 집권당인 보수당을 비롯한 주요 정당이다. 이들은 베터 투게더라는 조직을 만들어 스코틀랜드 핵심 지역인 글래스고와 에든버러 등에서 분리독립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독립을 이루면 재정 안정성이 높아져 2030년에는 연간 50억 파운드(8조7190억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한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자립 효과로 공공부채 부담은 줄어들고 세수도 늘어나 당장이라도 주요 7개국(G7) 수준의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북해 유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게 주장의 근거다. 영국 에너지산업의 중심인 북해 유전은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 원유와 가스 생산지의 84%를 차지하게 된다. 실제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도 독립정책 백서에서 북해 유전 개발 활성화로 연간 1조 파운드(1740조원)의 세수를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여기에 독립을 하더라도 화폐를 비롯해 여권과 운전면허 체계는 기존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혀 국가수립 비용 최소화를 약속했다. 이런 정책으로 유럽을 뒤흔든 경제위기로 복지정책이 후퇴된 데 불만을 가진 주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SNP의 생각이다.

하지만 베터 투게더는 독립하게 되면 스코틀랜드의 경제 사정은 악화될 게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인구 노령화와 북해 원유 생산량 감소 등이 원인이며 분리독립에 따른 국가수립 비용으로만 15억 파운드(2조6100억원)가 들어갈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영국 재무부도 최근 작성한 보고서에서 스코틀랜드 독립에 따른 세제 시스템 구성에 7억5000만 파운드(1조3000억원), 복지서비스를 위한 정보기술(IT) 시스템 구축에 4억 파운드(6970억원) 등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이와는 별도로 안보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정보기관 설립, 시장경쟁 및 금융감독 체계 수립, 국방 등에도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니 알렉산더 재무부 부장관은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영국 연방 안에서 누리던 국가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데, 자치정부의 독립백서에는 이런 비용이 누락돼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 독립 현실화될까 우려…결과는 부동층이 좌우할 듯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SNP 진영은 부동층이 가세해 지지세 역전은 시간문제라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이 지난 1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독립 찬성은 40%, 반대는 46%로 반대 의견이 약간 우세하지만, 부동층이 14%에 달해 결과는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새먼드 자치정부 수반은 “상대 진영의 지지층 6%만 확보하면 승리한다”며 “지난 총선에서도 막판 지지율을 16%나 끌어올렸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체 조사결과 부동층 3명 중 2명이 찬성으로 돌아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를 의식한 듯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닉 클레그 자민당 대표 겸 부총리,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 등 3명은 TV토론을 앞두고 스코틀랜드가 영국 연방에 잔류할 경우 재정과 법률, 치안 분야에 대한 스코틀랜드 의회의 권한을 확대해 내년 총선 이후 실시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찬반 예측이 혼조세를 이루면서 스코틀랜드에 본사를 둔 대기업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BBC는 지난 2월 에든버러에 본사를 둔 영국 최대의 연금보험사 스탠더드 라이프가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비해 사업기반을 잉글랜드로 옮기는 비상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산규모 2400억 파운드(417조7000억원)에 본사 직원만 5000명인 거대 회사가 본사를 스코틀랜드 밖으로 옮기게 되면 스코틀랜드 경제에는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 밖에도 영국 정부가 지분 81%를 소유한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와 북해 유전 정유업체 등 주요 기업들도 독립에 대비해 탈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 기업은 독립이 현실화되면 통화와 금리, 세제, 유럽연합(EU) 내 지위 등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이 증대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파운드화를 유지하고 통화동맹으로 경제안정을 이루겠다며 기업인을 다독이고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