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걷기 모임에 열심히 나갔다. 그래봤자 한 달에 한 번이다. 동료 소설가와 소설을 사랑하는 아무나와 소설을 사랑하지 않아도 걷기를 좋아하면 회원 자격이 있다. 모임의 이유는, 세계여행과 전국일주는커녕 내가 사는 곳도 변변히 모르지 않는가. 저 사는 동네조차 골목 곳곳을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지 않은가 하는 데 의견이 모아져서였다.
자기 동네는 각자 걷고, 못 걸어본 고궁과 저기 눈앞에 있지만 실제로는 가본 적 없는 남산 산책로처럼 손발이 쉽게 닿는 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남산이며 고궁 전부가 처음인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곳의 나무숲이 얼마나 울울하며 공간과 건축물이 얼마큼 아름답고 훌륭한지, 복잡한 서울 안에 신선한 공기와 한가함과 여유가 그곳에는 하늘만큼 땅만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도 처음이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서남북으로 목적지를 차차 늘렸다. 대부분 60, 70대에 평소 운동과는 담 쌓은 양반들이라서 북한산 둘레길 정도만 돼도 버겁다. 안내자 선도자를 뚜렷이 세우지 않아 끄떡하면 길을 잃는다. 그날도 그랬다. ‘이 길이 아닌게벼’를 재미있어하였지만 수차례 하고 나니 기진맥진이다. 낮은 산도 길을 잃으면 문득 두려운 법. 그런 데서 사고가 비롯되지 않던가. 그러던 중 누구의 눈썰미가 무궁화나무를 발견하였다. 나무와 풀이 뒤엉켜 있는 야생숲길에 웬 무궁화? 무궁화라면 일부러 심지 않고서야 거기 있을 리 없다. 게다가 푸슬푸슬한 흙덩이와 물 준 흔적으로 보아 불과 얼마 전의 상황이다. 무궁화는 10여m 간격으로 계속 심어져 있었다. 따라 걸으니 그게 길이었다. 거친 숲에 무궁화나무로 길을 내어 우리 걸음을 돕는 이는 누구인가.
저 앞에 드디어 허름한 운동복 차림으로 바삐 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인다. 한 손에 무궁화 묘목 다발과 다른 손에 물병과 호미가 있으니 무궁화 심은 사람이 맞다. 그는 그날까지 자비로 무궁화 5000주 이상을 심었다고 대답했다. 카메라를 들이댄 탓에 우리를 산중 기자단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름은 한사코 안 밝힌다. 순하고 평범하게 생긴 중년사내를 다시 멀리 앞세운다.
왠지 좀 바보 같지만 남이 알건 모르건 정말 저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 사람과의 뜻밖의 마주침에 고개를 저으며 주고받는 일행의 눈빛이 뿌듯했다. 평소 흠모한 대스타를 갑자기 만난 기분? 저마다 미소로 벙싯거리는 얼굴들이 아무래도 그랬다.
우선덕(소설가)
[살며 사랑하며-우선덕] 무궁화 심는 사람
입력 2014-08-11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