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이번 주말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8일 오전 800만 관객을 넘었다고 밝혔다. 개봉 10일 만이다. 종전 800만을 가장 빨리 넘은 '도둑들'의 기록을 6일이나 앞당겼다. 주말 예매율도 압도적인 1위(68%)인 데다 주말 120만을 끌어모은 전례에 비춰 이르면 9일, 늦어도 10일에는 1000만 관객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흥행 비결=지난달 30일 개봉된 '명량'은 각종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개봉일 최다 관객(68만), 평일 최다 관객(70만), 하루 최다 관객(125만), 역대 최단 기간 500만 돌파(6일) 등 한국영화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다.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층을 끌어들인 힘은 '애국심 마케팅'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8·15광복절을 앞두고 있고 일본 아베 정권의 잇단 우익 행보로 한·일 간 긴장이 팽팽한 상황에서 영화는 개봉됐다. 일본을 상대로 이순신 장군이 이룬 쾌거가 국민들 사이에 대리만족을 줬다는 분석이다.
세월호 참사로 멍든 국민들에게 '명량'의 이순신은 강렬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젊은층은 12척으로 330척의 왜군을 쳐부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끼고, 중년층은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영웅적인 카리스마에 반하고, 장년층은 회오리에 빠져든 이순신 대장선을 백성들이 힘을 합쳐 구해내는 장면에 박수를 보냈다.
CGV 등 극장의 '명량' 포스터 옆에는 '신에겐 아직 5000만 관객이 남아있습니다'라는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5000만은 실현되기 어렵겠지만 국내 최다 관객(1330만)을 기록한 '아바타'(2009)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상 처음 1500만에 이어 2000만까지도 가능할지 관심이다. 애국심 열풍이 광복절 연휴에도 계속되고 추석연휴 때까지 이어진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숨은 공신=기존의 사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음악으로 감동과 전율을 배가시켰다.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의 서사를 살리기 위해 김태성 음악감독이 사용한 건 16세기 말∼18세기 중반의 장중한 바로크 음악. 임진왜란이 발생한 시기와 비슷한 시대의 서양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공감을 높일 것으로 기대했다. 150인조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체코에서 녹음했다.
전쟁의 중심이 되는 조선 판옥선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각종 사료를 바탕으로 실제 사이즈(길이 30m)의 배를 건조했다. 왜군의 안택선은 나고야박물관 등에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 비슷하게 제작했다. 실제로 만든 배는 8척이고 나머지는 CG(컴퓨터그래픽)로 300여척의 배를 구현했다. 배 제작에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전투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내 이순신으로 분한 최민식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 중 대사를 인용해 "CG 살아있네"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순신 장군의 갑옷은 서애 유성룡의 찰갑 자료를 토대로 만들었고 왜군 대장 구루지마의 의상은 일본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다케다 신겐의 갑옷을 차용해 디자인했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소품이 영화를 더욱 짜임새 있게 했다. 탐망꾼 임준영과 그의 부인 정씨를 각각 연기한 진구와 이정현의 애틋한 사랑과 장렬한 최후도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명대사들=이순신이 시의적절하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두려움은 필시 적과 아군을 구별치 않고 나타날 수가 있다.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 등은 교과서적인 명대사다.
전쟁이 끝난 뒤 뱃사람들이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걸 알까 모르겄네. 모르면 호로새끼지"라고 하는 대사에서는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한다. 이순신이 토란을 먹으며 "먹을 수 있어 좋구나"라고 하는 대목은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명대사로 꼽힌다. 이순신이 부하들에게 한 "된다고 말하게"는 직장 상사들이 후배들에게 써먹는 유행어가 됐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명대사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다. 왜장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이 연전연패에 이를 악물고 "리슈운신"이라고 하는 대사는 '왜군의 굴욕'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기 10억짜리 일기장이다. 10억짜리"는 최민식이 조진웅에게 '난중일기'를 보여주며 하는 말이고,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는 류승룡이 전투를 독려하며 하는 말로 그의 TV 광고를 패러디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참사로 멍든 국민들 강력한 리더십에 감동…배 300여척 그래픽 구현…“CG 살아있네”
입력 2014-08-09 0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