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병 폭행사망 파장] 가혹행위 영상 보고, 강연 듣고, 토론… 全軍 특별인권교육 안팎

입력 2014-08-09 03:10
“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다 집합한 거야. 저능아 아냐, 고문관 같은 놈.” 선임병이 쏟아내는 욕설을 듣고 있는 후임병은 굳은 얼굴로 아무 소리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뇌파는 급격히 요동쳤고 분노와 흥분, 좌절감이 배어 있어 보였다.

8일 경기도 고양시 30기계화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강당에서 실시된 인권교육에서 병사들은 숨을 죽이고 영상을 지켜봤다. 욕을 먹은 병사가 “저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때는 병사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욕을 했던 선임병이 “저도 후임 때 당해봤는데…. 어느새 나도 똑같이 하고, 이제는 후회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씁쓸한 표정이 스쳤다.

사단 법무참모 김규하 대위는 “여러분도 인권이 있고 기본권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 인권보호이고 장병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전투력도 약해진다”고 강조했다. 김 대위는 병사들에게 인권침해에 해당되는 사례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그는 군대의 특수성 때문에 노동3권과 정치적 활동 자유가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급자의 지휘권이 무소불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야간당직을 한 병사에게 아침에 일을 시키거나 휴무일에 과도하게 작업이나 청소를 시키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했다. 구타는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징계해야 한다”며 “교육훈련을 목적으로 얼차려를 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날 육·해·공군 전 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특별인권교육’을 실시했다. 군이 모든 훈련을 중단하고 하루 종일 인권교육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육군 28사단 윤모(20) 일병 폭행사망 사건의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간 군에서도 인권교육을 실시해왔지만 형식에 그쳤다.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인 인권교육은 거의 없고 전문가들을 초빙해 실시하는 특강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국방부와 육·해·공군이 실시한 인권교육은 1시간짜리가 117회, 2시간 57회 등 174회가 있었고 연인원 2만6249명이 수강했다.

인권교육을 받은 병사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이 사단의 황모 일병은 “인권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회적이고 전시성 교육에 그친다면 ‘제2의 윤 일병’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한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군은 그동안 사고가 발생하면 형식적이고 땜질성 대책으로 일관했다”며 “군내 폭력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지휘관들이 먼저 인권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