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윤일병 폭행사망 파장] 軍 부적응 원인 1위는 ‘선임병 횡포’

입력 2014-08-09 04:17

군대 부적응 가능성이 높은 '정신건강 고위험군' 병사의 절반은 자살을 생각했으며 20%는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꼽은 군 부적응 요인은 '선임병의 횡포'가 압도적 1위였다. 또 절반 가까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국방부는 2012년 강원도 육군 모 사단 병사 84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연구 용역을 발주해 이 같은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받았다. 보고서에는 '지휘관과 간부들이 부적응 병사를 골칫거리로만 여기는' 문제점까지 상세히 지적돼 있었다.

'윤 일병 사건'을 예견한 듯한 연구 결과를 손에 쥐고도 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진단조차 어려운 병영 인권과 군 지휘부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폐였다.

강원도 춘천시 정신보건센터는 당시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정신보건센터를 활용한 군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 개발'이란 연구보고서를 제출했다. 전문기관이 사단 규모 병력의 정신건강 실태를 점검하기는 처음이었다.

센터는 병사 8400명을 조사해 추려낸 정신건강 고위험군 중 112명을 심층 면접했다. 면접 대상은 상병과 일병이 103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49.1%인 55명은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22명(19.6%)은 실제 자살 시도를 했고, 두 차례 이상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5명이나 됐다.

이들은 군에 적응하지 못한 원인으로 '선임병의 횡포'(44.7%)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업무 부담·미숙(25%), 근무·훈련 부적응(10.7%), 통제된 생활과 따돌림(9.8%) 순이었다. 면접 대상자 중 절반에 가까운 44%는 "부적응 문제를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못했으며 혼자 해결하려 한다"고 답했다. 병영생활상담관이나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는 경우는 6.2%에 불과했다. 윤 일병 경우처럼 간부의 묵인 아래 선임병이 부대원들을 통제하고 괴롭히면 막다른 골목에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정신보건센터는 지휘관과 간부들이 병사 정신건강 문제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군 지휘관은 부적응 병사를 회복시키려 하기보다 골칫거리로 여겨 전역 때까지 사고 치지 않도록 단속하려는 입장이 강하다'며 '가장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할 간부가 아예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비판했다. 또 '지휘관의 역할이 절대적인 군 특성을 고려하면 지휘관과 간부들의 인식이 적극적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은 2009년부터 복무 부적응 해소와 사고 예방을 위해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을 두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2011년 국군수도병원에 정신건강증진센터도 문을 열었으나 이곳을 찾는 병사에 대한 파악도 잘 안 되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8일 "자체적으로 통계를 내지 않아 진료 인원 중 몇 명이나 가혹행위를 당했는지 추정하기 어렵다"며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보고가 극소수 있지만 진료 때 이를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군의 연간 자살 사망자는 2001년 66명에서 2011년 97명으로 증가했다. 군대 안전사고 사망자가 같은 기간 95명에서 42명으로 줄어든 것과 정반대 추세다. 연구 책임자였던 박종익 강원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위험군 병사들은 군대에서 탈출구가 없어 극단적 선택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들을 보는 지휘관의 시선이 관리자에서 헬퍼(도와주는 사람)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