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원의 수업 ‘성경과 문학’ 시간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다루면서 11세기 가톨릭 세계의 현안들과 당시 정치·종교적 갈등 상황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있었다.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은 신학과 인문학, 종교와 과학, 진리와 비진리, 본질과 형식 등 다양한 대립적 질문들을 통해 범인을 추적한다.
가톨릭을 소재로 삼았지만 사실상 교회의 본질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특히 ‘진리’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진리 의지’가 진리로 둔갑해 삶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무서운 도구로 돌변하는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이는 곧 신앙과 교리의 한계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진정한 진리란 스스로를 진리라고 구태여 입증할 필요도 없는, 겸손과 여유로움과 기다림 속에 머물러 있는 것임을 저자는 담담하게 묘사한다.
소설의 백미는 가톨릭의 두 축인 도미닉파와 프란치스코파간의 격렬한 교리 논쟁이다. 그리스도의 ‘청빈’ 문제를 두고 다투는 교권 투쟁은 오늘날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는 개신교와 더불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든다.
특히 지난해 취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1960년대 가톨릭이 인류공동체의 문제들을 교회론적으로 품고자 몸부림쳤던 소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연장선상 시각에서 읽힌다. 즉 ‘교회를 위한 교회’ ‘종교를 위한 종교’를 넘어서야 한다는 위기의식과 각성으로 비춰진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은 ‘신’에 관한 질문이 곧 ‘사람’에 대한 질문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물론 작금의 가톨릭은 아동성추행 문제와 바티칸 은행 비리문제, 마피아 연루설 등 시급한 과제들과 씨름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현직 교황이 보여주는 개방적인 태도와 솔직함, 순수한 열정은 기꺼이 주목받을 만하다.
개신교 역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공의 행복’을 위해 공동체의 갈등을 치유하고 용서하며 화해하고 대화하고 협력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종교의 생명은 교리나 문법이 아닌 삶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교리나 해석의 차이는 대부분 각자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의 산물이다. 차이와 잘잘못에 대한 시시비비는 진위 여부를 떠나 편견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에코의 말대로 “피와 광기에 굶주려 울부짖는” 이 사회의 처절한 갈등과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개신교가 되도록 시야를 넓혀야 한다. 종교의 본질은 기득권 안주나 옹호에 있지 않다. 끊임없는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지속적인 성찰에 있다.
이는 개신교나 가톨릭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신앙 혹은 진리에 대한 양측의 지나친 확신이 오히려 반신앙적, 반진리적 모습으로 나타나 해악을 끼치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교황 방한을 계기로 개신교는 좀 더 유연하고 성숙해지길 바란다. 남북문제와 경제·사회 양극화 문제, 교육과 고용·노동 문제, 그리고 산업의 공공성 회복문제 등 우리 사회 공공의 행복을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는 종교로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정종성 교수(백석대 기독교학부)
[특별기고-정종성] 교황 방한에 즈음하여
입력 2014-08-11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