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도 마닐라 항구 끝자락에 위치한 빈민촌. 거대한 컨테이너박스에 가려져 마닐라 시민조차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11만명의 거주민 중 절반이 주민증 없이 살고 있는 세계 3대 빈민지역 중 한 곳. 주민 대부분이 마약, 매춘, 장기밀매로 생활하는 이곳 ‘바세코(Baseco)’다.
지금 바세코에 희망이 싹트고 있다. 16년째 바세코의 웃음전도사로 살고 있는 신승철 선교사, 눈물 많은 바세코 아이들의 엄마 이경욱 선교사 등이 복음을 전하자 그 땅이 소망, 희망, 은혜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 4남매의 엄마 오가와는 더 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기꺼이 돼줬고, 마약에 빠졌던 아주머니는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감사를 외친다. 한 청년은 제빵 기술을 배우며 희망의 빵을 굽겠다고 비전을 밝혔다. 그리고 쓰레기더미 위에서 철근을 줍던 아이들이 환하게 웃음꽃을 피운다.
이들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바세코의 아이들(Hope in BASECO)’이 오는 14일 전국 15개 극장에서 개봉한다.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김경식(51·청주대 영화학과 교수) 감독과 신승철(47) 선교사를 만났다. 영화는 김 감독과 청주대 영화학과 학생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졌다. 김 감독은 영화에 대해 “선교사 한명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면서 “현지 동역자들을 키워 차기 지도자로 만드는 과정, 영상 콘텐츠를 활용한 선교의식의 변화, 선교사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나왔던 기독교 영화들과 달리 선교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게 어쩐지 낯설다. 선교지 이야기를 소개하고 감동받아 도네이션으로 이어지는 영화는 적어도 아니란 얘기다. 신 선교사는 “이 영화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 아니다.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이 드러나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신 선교사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세코 사역은 계획한 게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이끌어주셨다”고 고백했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20대 때 이미 평신도 사역자로 필리핀 톤도에서 헌신 중이던 신 선교사는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고 필리핀 민다나오로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마닐라에서 1년간 머물며 동역자들의 언어 훈련을 돕던 신 선교사는 우연한 기회에 현지 사역자의 안내를 받아 바세코를 찾았다.
“배 타고 들어가는데, 방파제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없었습니다. 각국의 선원들을 상대로 몸 파는 여성들이 바세코의 경제를 돌릴 정도로 비참한 곳이었지요.”
1998년 4월의 한 날을 그는 잊지 못한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흑인 아이를 안고 있던 현지 여성이 간절하게 말했다. “목사님이세요? 여기에 교회를 세워주세요.” 바세코 사역은 그렇게 이뤄졌다. 매춘부들과 교회를 세웠다. 그들과 개척한 교회가 지금 5개에 이른다. 신 선교사 혼자 한 일이 아니다. ‘세계선교공동체(WMC)필리핀’에 속한 사역자들이 함께한 일이다. WMC필리핀에는 목사만 5명이고, 평신도 사역자가 15명이다. 현지인 사역자가 50여명에 이른다. 교회·교육·훈련·NGO 사역부와 총무지원부로 나눠 서로 협력해 팀사역을 펼치고 있다. 신 선교사는 WMC필리핀 대표를 맡고 있다.
영화는 이들 사역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실제로 보면 바세코 현지인들의 삶은 매우 비참하다. 그러나 영화는 우울하지 않다. 쓰레기더미를 놀이터 삼아 노는 아이들, WMC 급식소에서 오후 3시에 한 끼 식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조차 참 밝고 예쁘다. 신 선교사는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기쁘고 밝고 희망에 찬 것”이라며 “바세코가 빈민사역의 모델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김 감독은 “촬영하는 동안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우리 안에 ‘협력선교자’란 사명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왜… 이 아이들 비참한 삶이 예쁘게 보일까
입력 2014-08-09 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