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0년대 초, 강원도의 어느 공병부대. 한 부사관이 사병들을 구타하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사격 표지판 앞에 병사들을 세워놓고 총으로 위협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때 한 상병이 당시 군목이었던 윤병국(현 미래군선교네트워크 사무총장) 목사를 몰래 찾아와 상황을 전달했다. 윤 목사는 이튿날 부대장을 찾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고, '악마' 부사관은 즉시 다른 보직으로 발령이 났다.
#2. 지난해 가을, 강원도의 한 야전부대 군인교회 담임인 민간인 출신의 A목사는 한밤중에 한 이등병의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 부대 생활 적응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이튿날 A목사는 해당 부대 지휘관의 배려로 그 병사와 1시간가량 기탄없이 얘기를 나눴다. A목사는 7일 "교회 주보나 부대생활관 곳곳에 제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놨다"면서 "그런 방식으로 상담이나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1000여명 군목·군선교사들, 병영문화개선 앞장=우리나라의 군목 활동은 1950년 6·25전쟁 때부터 시작됐다.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MEAK)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군목은 260여명. 이 중 3분의 2 정도가 육군에서 활동한다. 민간인 목사 신분으로 군인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군선교사’들은 800여명이며, 이 중 전임 사역자는 350명 정도다.
군인교회는 약 1000곳에 달한다. 연대급 이상은 군목들이, 대대급 이하 교회는 군선교사들이 주로 맡고 있다. 이들의 사역은 예배와 전도는 기본이고 장병 상담과 훈련장 위로·격려 방문, 인성·사고예방 교육 등 목회부터 병영문화개선 활동까지 다양하다.
지난 5일 ‘윤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권오성 전 육군참모총장은 지난해 9월 취임 당시 군종들을 만난 자리에서 “되도록이면 많은 장병과 만나 달라”고 주문했다. 부대 지휘관 인력만으로는 장병들의 인성·정신 교육이나 관심사병 돌봄 같은 다양한 업무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출범한 민관군병영문화혁신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전체 육군 병사 가운데 23.1%(8만811명)가 보호·관심 병사로 분류돼 있다. 또 지난해 인명 사고로 사망한 병사는 90명이며, 이 중 62명(68.9%)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9년간 군목으로 활동한 최문식(분당샘물교회) 목사는 “최근 들어 군에서 민간인 출신의 전문 상담사들을 정책적으로 늘리고 있다”면서 “하지만 기독교를 비롯한 군종 사역자들은 전문 상담사들이 다루기 힘든 장병들의 고충이나 비밀상담 등 사각지대의 문제들을 처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현직 군목과 군선교사들은 군사역 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MEAK와 한국군종목사단이 펼치고 있는 병영문화개선운동인 ‘선샤인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이는 누가복음 10장 25∼37절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본 딴 신병적응지원 프로그램이다. 또 관심사병 등과 함께 펼치는 ‘비전캠프’나 군 상담심리코칭학회 등이 준비 중인 장병상담심리 전문가 양성 업무도 전·현직 군목 및 군선교사들의 공조를 통해 이뤄진다.
◇종교활동 참가자 갈수록 줄어 ‘비상’=한국군종목사단 소속 한 군목은 “최근 몇 년 사이 주일 예배 같은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장병 수가 점점 줄고 있다”면서 “주말 자유시간 확대 등 생활 패턴 변화에 따른 영향도 있지만, ‘특정종교를 강요하지 말라’는 종교자유 보장 분위기가 군 전반적으로 확산된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장병과 군종 간의 접촉뿐 아니라 보호·관심 사병 등에 대한 돌봄 기회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 출신의 한국기독군인연합회 양육담당 하두철 장로는 “종교 유무에 따라 군인 본연의 임무인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의 자세에는 큰 차이가 있다”면서 “특정 종교를 강요해선 안 되지만 종교 활동 참여는 권장하고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재찬 이사야 기자 jeep@kmib.co.kr
[軍폭력 근절, 군종이 대안이다] ② 병영문화개선 위한 군종들의 땀방울
입력 2014-08-08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