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2011년 가정용 의류관리기 '트롬 스타일러'를 출시했다. 세탁소에 맡기지 않고 집에서도 옷의 구김이나 냄새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한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필요할 때만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것과 200만원을 주고 집안에 트롬 스타일러를 들이는 것을 저울질했을 때 후자를 선택하기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였지만 소비자 심리를 파악하지 못해 대중화에 실패한 사례다.
스마트폰 제조사나 이동통신사들이 의욕적으로 만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도 사용자들에게 불만만 안겨주고 '폐기처리'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음악·쇼핑·동영상 서비스 앱 등이 업체들의 요구로 기기에 기본 탑재됐지만 사용자들의 실생활에 유용하지 않고 배터리 사용 시간만 단축시킨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는 성능, 편의성, 가격, 디자인, 브랜드 선호도 등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 이 기준은 소비자마다 다르다. 따라서 만드는 사람은 '좋은 제품'이라고 내놨는데, 사용하는 사람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치 내 입맛에 맞게 정성들여 만든 음식이 대접받은 사람에게는 형편없는 요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상황은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전자·통신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최고의 기술과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냈는데 소비자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요즘 기업들의 고민이다. 그런 불안함 때문에 업계에선 사용자의 아이디어를 끌어 모아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답은 시장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늘 사용하는 IT 기기나 가전제품은 스펙도 중요하지만 사용성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개발자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고슴도치'다. 제 자식의 문제점을 남처럼 객관적으로 볼 순 없다는 의미다.
SK텔레콤은 최근 광대역 롱텀에볼루션 어드밴스드(LTE-A) 서비스를 상용화하면서 주부들로 구성된 고객 자문단을 선발해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다. 통화 플랫폼 'T전화' 서비스도 고객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해나갈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사용자가 원하는 사용자경험(UX)을 개발하기 위해 대학생 서포터스를 운영한다. LG전자는 온라인에 누구나 아이디어 제안서를 등록할 수 있는 플랫폼 '아이디어LG'를 만들고, 아이디어가 상품화되면 해당 제품 매출액의 4%를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다양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신사업의 해법을 찾으려고도 한다. SK텔레콤은 '대학생 ICT비전 공모전'을 열어 대학생들의 신선한 시각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과 다른 산업을 융합할 수 있는 아이디어 찾기에 나섰다. 이는 시장에 제품을 알리는 마케팅 효과도 있다. LG전자의 모바일 포토프린터 '포켓포토' 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에는 2200여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고, 게시물 조회수는 6만건에 이르는 등 인기를 끌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기업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커지고, 소비자들의 눈이 높아지는 만큼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7일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간 생각해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과 혁신적인 제품을 발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기획] 고객 심리 읽어 혁신제품 개발… 소비자 상상이 상품으로
입력 2014-08-08 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