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병 폭행사망 파문] “헌병대·軍검찰 ‘사고사 처리’ 짜맞추기 의혹”

입력 2014-08-08 03:14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사망 사건과 관련해 윤 일병의 사망 원인으로 가해자의 구타에 따른 뇌진탕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그동안 군 당국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발생한 뇌손상으로 윤 일병이 숨졌다고 밝혀왔다. 이병주 기자
군인권센터가 윤모(20) 일병 폭행사망 사건에 대해 7일 제기한 의문점의 핵심은 구타에 의한 사망이 고의적으로 은폐됐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집단적인 가혹행위에 의한 명백한 살인 범죄임에도 28사단 헌병대 및 군 검찰이 처음부터 '사고사 처리' 결과를 예단해놓고 짜맞추기식 수사를 했다는 지적이다.

◇사망원인·사망시간 등 ‘조작’됐나…“공소장에 많은 사실이 누락돼 있다”=군인권센터는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일병이 가해자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과정에서 의식을 잃었고 이어 의식 소실에 의한 기도폐쇄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장은 “사건 당일 윤 일병이 주범 이모(25) 병장에게 머리를 수차례 맞은 뒤 갑자기 물을 마시게 해 달라고 애원했고, 물을 마시러 가다가 주저앉아 오줌을 싼 후 의식을 잃었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 위원인 김대희 응급학과 전문의는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구타 및 가혹행위가 사망의 선행 원인”이라며 “음주운전 후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음주운전을 사건의 원인으로 보는 것과 같은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윤 일병이 보인 발작 증상이 ‘뇌진탕’으로 부르는 경증 외상성 뇌손상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소견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과도한 폭력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앞서 국방부는 사인에 대해 ‘음식물로 인한 기도폐쇄에 따른 뇌손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군인권센터는 가해자들이 평소 인명구조술을 익히고 있는 의무병임에도 등 뒤에서 명치를 잡아당겨 음식물을 토하게 하는 기도폐쇄 환자에게 반드시 시행하는 구조술인 ‘하임리히법’을 시행하지 않은 경위를 추가 수사해 공소장에 넣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임리히법은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시술할 수 없기 때문에 윤 일병이 구타로 의식을 잃었을 수 있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사망 시점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임 센터장은 “윤 일병이 4월 6일 가해자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뒤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받다 다음날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지만 이는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며 연천군보건의료원 자료를 인용해 “윤 일병이 내원 당시 이미 호흡과 맥박이 없는 상태, 즉 의학적으로 ‘DOA(dead on arrival)’라고 불리는 사망 상태였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는 군 검찰이 사망 원인과 시간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논리로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고 비판했다. 윤 일병이 구타로 치명적인 상태에 빠졌다는 주장은 가해자들의 혐의가 상해치사가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공소장이 변경돼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헌병대, 군 검찰 수사 축소·은폐했다”=이 병장 등이 윤 일병이 DOA 이후 맥박이 돌아온 후 뇌사상태에 빠지자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말을 맞추자’고 했었다는 증언도 새롭게 공개됐다. 임 센터장은 “목격자인 의무반 입실환자 김모 일병이 4월 6일 밤 이 병장으로부터 ‘뇌사상태가 이어져서 이대로 윤 일병이 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 가슴에 든 멍은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생긴 것이라고 말을 맞추자’고 했던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증언을 근거로 만약 가해자들이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상해치사라고 한다면 ‘죽기를 바랐던’ 발언과 모순이 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진술 등 수사기록이 존재하는데도 헌병대와 군 검찰이 이들을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했다”며 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군인권센터는 수사 축소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공소장에 이 병장이 윤 일병으로 하여금 성기에 연고를 바르게 한 사실이 명시돼 있음에도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하지 않은 사실을 거론했다. 임 센터장은 “아예 사고사로 처리하기로 처음부터 짜맞춘 것같이 수사했다”며 “국방부는 28사단 헌병대장, 6군단 헌병대장, 각 헌병대 담당 검찰수사관 등 관련자들을 즉시 수사하고 사법처리 및 보직해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수사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김민석 대변인은 “부검 의사가 부러진 갈비뼈 14개 중 13개가 심폐소생술 때문이라고 했다”며 “사망 시점도 맥박이 돌아온 후 다음날 사망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조작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