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삶을 바꾸는 리추얼

입력 2014-08-08 03:06

지난주 구순을 바라보시던 작은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노환으로 고생하셨던 걸 알고 있었음에도 갑작스러운 부고에 마음이 얼얼했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와중에도 보통 때처럼 몇몇과 전화를 하고, 내일의 회의를 생각하고,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수선을 떨었다. 하지만 빈소에 들어서서 헌화와 분향, 절까지의 정해진 의식을 행하는 그 몇 분 동안, 조금 전까지의 번잡함과 황망함을 내려두고 고인에 대한 마음만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분주하고 무감각하며 평범한 일상과의 결별, 이를 통해 지금 내가 만나야 할 핵심에 곧장 가 닿는 것, 그것이 바로 의식, 즉 리추얼의 힘이다. 리추얼을 사전적으로 정의하면 장례식과 같은 ‘종교적인 제례’가 있고, 또 한 축이 ‘일상 속에서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과 같은 일’이라고 한다. 일상의 리추얼이 특히 중요한 것은 매순간 자기 삶을 지켜내고 좀더 깊게 자신을 만날 수 있는 힘을 배양하기 때문이다.

‘리추얼’이란 책에는 자기만의 ‘엄숙한 습관’을 통해 창조성과 영감을 유지했던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오후엔 달리기와 수영을 한 뒤 9시면 잠이 들었다고 한다.

한 워크숍에서 전설적인 무용가 안나 할프린을 만나게 되었다. 올해 94세인 그녀의 손에는 늘 갓 내린 커피가 들려 있었는데, 아침마다 제자가 가져오는 커피를 마시면서 스튜디오를 조용히 걷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녀가 수업을 시작하는 의식이었다. 그러면서 참가자들에게 이른 아침 워크숍을 준비하는 시간을 자기만의 리추얼로 만들어보라고 했다.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내려오는 순간, 그리고 사람들과 인사하는 순간, 야외무대로 나가 몸을 푸는 순간….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고 그 각각마다 자신만의 리추얼을 시도했다. 이 ‘엄숙한’ 시간을 위해 우리는 좀더 천천히 걷고 숨쉬며, 잡다한 대화를 나누기보다 오늘 하루 시작될 수업 앞에 나의 목적과 마음가짐을 되새기곤 했다. 놀랍게도 그 며칠간의 의식은 묵직한 무게중심과 영감을 통해 우리가 워크숍에 좀더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심어주었다.

책의 인쇄용 필름을 검수하는 시간이면 나는 손을 씻고 와서 커피를 한 잔 마신 다음 숨을 고른다. 생각해 보니 책이 세상으로 나가기 전 행하는 나만의 작은 리추얼이었던 셈이다. 하루하루 나만의 작은 실천으로 의미와 깊이를 부여할 수 있다면, 일상의 거센 흐름에 무턱대고 휩쓸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