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규 교수의 바이블 생명학] 생명 이식

입력 2014-08-09 03:11

50대 중반인 이인수씨는 심장병 환자다. 병명은 확장성 심근병증. 심근 근육들이 늘어나서 제대로 수축과 이완을 하지 못해 심부전증을 초래하는 병이다. 그는 수년간 약물 치료를 받아왔으나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항상 호흡곤란과 피곤함을 느껴왔다. 최근 이러한 증세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에는 숨이 차서 걷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가벼운 조깅을 해도 별 어려움이 없다. 죽었다가 살아난 느낌이었다.

그는 가끔 자신의 맥을 집어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힘찬 박동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체험은 곧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한창 나이에 교통사고로 뇌사(腦死) 상태가 되었던 그 사람. 하나뿐인 심장을 자신에게 제공하고 간 그 사람. 그 사람이 그의 생명을 주었기에 이렇게 살아있다고, 그 사람은 생명의 은인이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의 안이한 삶을 스스로 책망한다. 그 사람이 살고 싶었던 삶이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의 삶도 함께 살아주어야 하는데 하면서 말이다.

30대 초반인 나사렛 예수는 사형수가 됐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를 고소했다. 그를 심문한 유대 총독 빌라도는 그에게서 어떤 잘못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무죄를 선고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간교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집요한 고소와 선동된 군중의 악의적인 구호에 굴복해 자신의 양심과 이성에 반하는 선고를 하고 말았다. 십자가 사형이라는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들에게나 내려지는 중형을 나사렛 예수에게 언도했던 것이다. 십자가 사형은 처참함 그 자체이다. 큰 못이 두 손과 두 발을 관통하고, 그곳으로부터 연신 피가 흘러나와 주위가 온통 피범벅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체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상지의 어깻죽지 살이 찢겨나가 고통 가운데 죽임을 맞이하게 되는 그 처참함 말이다.

이러한 십자가 죽음과는 별도로 나사렛 예수는 그의 죽음을 준비해 왔다. 그의 가르침에는 그의 죽음이 어떠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가 아주 잘 드러나 있다. 그 가르침을, 그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6∼57)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는 죽는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 치명적인 병의 특징적인 증상은 굶주림과 목마름이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죽고 사랑에 목말라서 죽는 것이다. 이 증상은 결국 영원토록 굶주리지 않게 하는 생명의 떡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명수로 치료될 수 있다. 사람이 이 치명적인 병에서 해방되려면 이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셔야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의 양식을 이 땅에 내려 주셨다.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던 것이다. 생명의 떡으로 보내셨던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분의 살과 피가 바로 생명의 떡이요, 생명수였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몸을 먹고 그의 피를 마셔야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생명의 양식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생명이 그 사람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이식받는 것, ‘죽음에 이르는 병’을 자초한 인간이 스스로 그 치명적인 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하는 성경적인 치료법이다.

김덕규 교수 <동아대 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