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천명관(50·사진)이 두 번째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창비)를 펴냈다. 최근 몇 년간 계간지에 발표했던 8편의 단편을 묶었다. 풀리지 않는 인생, 고단한 밑바닥의 삶에 대한 보고서다. 문체는 군더더기 없이 사실적이다. 꼬이는 인생을 위로하는 슬프고 따뜻한 유머도 있다.
6일 작가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근처에서 만났다. 그는 “띄엄띄엄 쓴 글인데 모아놓고 보니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뿐이더라. 원고 정리를 하면서 새삼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게 내가 속한 세계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작가만의 문학적 통쾌한 한 방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고심 끝에 그는 “헛소리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횡설수설하지 않고, 가능한 사실의 진술만 쓴다고 부연했다. 그의 작품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표제작 ‘칠면조와…’에 나오는 문장으로 풀어봤다.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게 됐다.
“청춘? 나는 그게 뭔지 모른다. 인생을 시작한 순간, 이미 발목까지 물에 잠긴 기분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대를 골프용품점과 보험회사에서 보냈다.
“문학에 즐겨 등장하는 청춘의 절망은 미래가 있으니 달콤하다. 그런데 내 작품 속 인물은 어찌해볼 수 없는 나이의 중년이다. 미래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사실 이런 소설은 1980년대 이미 사라졌다. 안다. 그래도 이게 내가 가장 관심 있고, 잘 아는 세계다.”
계획대로 풀리는 인생은 별로 없다. 천명관도 그랬다. “어쩌다보니 작가가 됐다. 인생은 우연과 아이러니다. 그만큼 무겁고, 만만치 않다.”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하지만 어디로든 가야했다.
30대는 영화 일을 했다. 군대 동기 사무실에 갔다가 우연히 시작했다. “당시 나는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답이 안나왔다. 밥벌이도 안 됐다. ‘절대 갑’인 감독에 맞추는 시나리오를 쓰는데 한계를 느끼고 직접 감독을 해보자는 무리수를 뒀다. 그런데 연출부 경험도 없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관심 갖는 이는 없었다.” 그가 글을 쓴 ‘총잡이’ ‘북경반점’ 등 몇 편이 스크린에 옮겨졌지만 ‘영화인 천명관’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마흔이 되던 2003년 그는 소설로 신인상을 탔다. 장편소설 ‘고래’가 호평을 받으며 빚도 갚고, 신용불량자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슬럼프는 곧 찾아왔다. 소설을 계속 써야하나 확신이 없었다. 드라마에 기웃거리기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며 3년이 지났다. 장편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2’ 등을 펴냈다. “창비 계간지에 장편 연재하던 걸 마무리 짓지 못하고, 이번에 소설집을 내게 됐다. 쑥스럽다.”
그래 까짓것, 거칠게 한판 살다 가는 거다. 인생 뭐 있나?
50대에 접어든 그는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다. 시나리오 쓴지는 1년이 넘었다. 영화판에 돌고 있는 시나리오는 1200여개. 이중 10%인 120편만이 낙점을 맞는다. 그의 시나리오가 90%에 머물지, 10%에 속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보이스카우트와 영화감독의 공통점이 뭔지 아느냐고 묻더니 “언제나 준비만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소설도 계속 쓸 예정이다. 그러다 환갑이 넘으면 은퇴하고 조용한데서 범죄 소설 같은 장르문학을 써보고 싶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책과 길] 영업사원·작가·영화감독… “인생은 거칠게 한판 살다 가는 거죠”
입력 2014-08-08 0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