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믿을 레몬마켓? 중고차 시장의 변신!

입력 2014-08-08 03:44 수정 2014-08-08 14:45
최근 중고차 매매가 크게 늘면서 국내 대기업 뿐아니라 수입업체들까지 잇따라 중고차 경매와 매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부터 자동차 이력관리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 장안평 중고차매매시장. 국민일보DB
이른바 ‘레몬마켓’으로 불리는 중고차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수년간 신차 교환 주기가 빨라지면서 중고차 매물이 많아지자 매매사업에 뛰어드는 업체가 늘고 있다. 업체들은 정확한 성능 검증과 공정한 거래를 강조하고 있어 그간 불신을 받아온 중고차 시장이 투명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부쩍 활기를 띠는 건 중고차 경매사업이다. 경매를 통해 중고차 매매사업자에게 차를 팔고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중고차 사업자가 아닌 개인은 입찰에 참여할 수 없지만 타던 차를 파는 길은 열려 있다. 현재 국내에는 5개 업체가 중고차 경매사업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와 KT 계열사인 KT렌탈, SK엔카를 사업부로 두고 있는 SK C&C, 렌터카 회사를 운영하는 에이제이렌터카, 중고차 전문기업 동화오토앤비즈 등이다. 이 가운데 KT렌탈과 동화오토앤비즈는 각각 지난 4월과 지난해 5월 경매장을 열었다. 사업을 하려면 150㎡ 이상의 경매장이 있어야 한다.

각 업체의 사업 이유는 조금씩 다르다. 업계 1위로 전국에서 경매장 3곳을 운영 중인 현대글로비스는 거래에서 파생하는 물류 수요를 노린다. 자동차 운송이라는 고유의 사업을 중고차 거래에 접목시켜 중고차 수수료와 물류비용을 모두 챙기겠다는 것이다. 렌터카 사업을 하는 KT렌탈이나 에이제이렌터카의 경우 노후 렌트 차량을 매각하려는 목적이 있다. KT렌탈은 연간 2만대 이상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개인을 상대로 중고차 거래를 중개하는 SK엔카는 사업 확장을 위해 2011년 경매장을 열었다.

공통적인 배경도 있다. 최근 수년간 중고차 물량이 풍부해지면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졌다. 수수료 수입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중고차 거래는 2009년 200만대 이하였으나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320만∼330만대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150만여대인 신차 거래의 2배 이상이다. 중고차·신차 거래 비율이 이와 비슷한 미국, 일본 등은 이미 경매가 활성화돼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7일 “경매를 통한 중고차 거래 비중이 일본은 60%, 미국은 25%에 이른다”면서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경매가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전체 중고차 거래에서 경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3%대에 머무르다 올 들어 4%대로 올라섰다. 업체들은 거래 건당 30만∼40만원의 상한선을 두고 낙찰금액의 2.2%에 해당하는 낙찰 수수료를 받고 있다.

정부는 중고차 경매 활성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5월 중고차 경매장 면적에 관한 기준을 없애는 내용의 자동차 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진입장벽을 낮춰 사업하는 업체를 늘리겠다는 취지다. 기존 중고차 업계는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전면적인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세월호 사건으로 거래가 다소 줄었지만 전반적으로 중고차 물량이 많아지는 분위기여서 업계가 느끼는 위기의식이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수입차 업계도 중고차 매매 사업에 적극적이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달 서울 서초구 양재대로 서울오토갤러리에 두 번째 중고차 전시장을 마련했다. 자사 뿐 아니라 타사 차량까지 매입을 확대하고 있다. BMW코리아도 올해 서울 가양동과 장안평에 신규 중고차 전시장을 열었다. BMW는 중고차 매장을 전국 9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45% 늘어난 3600대 판매를 예상한다. 폭스바겐코리아도 하반기 중고차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수입차 업체가 중고차 사업에까지 손을 뻗치는 핵심적인 이유는 ‘가격 관리’ 때문이다. 수입차는 비싼 수리비 탓에 보증기간이 끝나면 가격이 급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이 신차 구매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수입사들이 중고차 매매에 뛰어든 것이다. BMW 관계자는 “중고차의 품질과 가격을 잘 관리하면 재구매율도 높아진다”면서 “판매중인 신차와의 가격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수입차 업체들은 신차 판매 때와 마찬가지로 딜러를 통해 중고차 매매를 한다.

주목할 점은 경매업체와 수입차 업체 모두 엄격한 성능 점검과 투명한 절차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경매업체들은 온라인 등을 통해 경매 전 과정을 공개한다. 사고 유무도 꼼꼼히 체크한다. KT렌탈은 “계열사인 금호렌터카의 전문 평가사가 직접 차량을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도 “4년·10만㎞ 이내 차량만 매입하고 178가지 정밀점검을 거쳐 품질을 인증한 차만 판매한다”고 말했다. 수입차 업체는 ‘인증 중고차’에 보증수리기간을 1년 정도 부여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결국은 중고차 매매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중고차 매매 업자들이 자칫 경매나 수입차 업체에 손님을 뺏길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느껴 자정운동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개인이 차를 살 수도 있도록 경매 제도가 바뀔 필요가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중고차 시장도 더욱 나은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신차 딜러의 중고차 매매 행위를 신고할 경우 포상금을 주는 제도도 실시된다. 신차 딜러의 중고차 거래는 불법이지만 딜러가 중고차를 갖고 간 뒤 일정 금액을 신차 비용에서 빼주는 관행은 계속돼 왔다. 전문가들은 신고 포상금제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중고차 업계에는 분명한 압박요인이 된다.

레몬마켓의 반대말은 피치마켓(peach market)이다. 정보의 불균형이 사라져 가격에 비해 고품질의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을 뜻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내 중고차 시장에 언젠가는 ‘피치마켓’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는 기대가 조금씩 일고 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