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도 아니고 이딴 거 하나 못 외우냐?” 2012년 9월 육군 52사단에서 탄약수로 근무하던 김모 이병의 목에 A병장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식단표를 외우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김 이병은 입대한 지 겨우 한 달 된 신병이었다.
선임병들은 김 이병의 동작이 느리고 말이 어눌하자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임무를 숙지하지 못한다며 1분간 벽을 바라보고 머리를 흔들게 했다. 훈련에서 뒤처지자 군홧발로 정강이를 25번이나 걷어차기도 했다. 대대원 전원의 이름·소속·입대월을 답하지 못한다고 폭언을 퍼부었다. 여자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강요했던 한 선임병은 소개받은 여성에게 애인이 있었다며 김 이병을 구타했다.
가혹행위는 인신공격으로 이어졌다. 김 이병의 눈이 소를 닮았다면서 소 울음소리를 흉내내 보라고 시키거나 ‘소○○’라고 모욕했다. 김 이병 등 신병 네 명을 일렬로 세운 뒤 “너흰 사람도 아니다. 동물이다”라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모두 부대 전입 후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더욱이 김 이병은 전입 당시 군생활 적응검사(MAI)에서 ‘자살 위험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온 상태였다. 즉각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했지만 이 부대는 두세 차례 중대장 면담만 진행했고 가혹행위 사실을 적발하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김 이병은 그해 10월 아버지 기일에 외박을 나와 ‘선임들 때문에 힘들다. 폭언과 모욕,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서울 용산의 다세대주택 지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대 헌병단은 같은 해 12월 김 이병 사망 원인 수사보고서에서 ‘부대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선임병들로부터 폭행, 가혹행위, 폭언과 욕설 등을 받아오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기재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육군본부 전공사망심사위원회는 “부대 내 구타·가혹행위 때문이라기보다 부친의 사망 등 개인적인 사유가 더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김 이병의 자살을 ‘일반사망’으로 분류했다. 가혹행위를 한 선임병도 9명 중 2명만 기소돼 벌금 10만∼40만원이 선고됐을 뿐이다. 나머지는 영창 5∼15일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국가인권위원회는 6일 군 당국에 “김 이병 순직 처리를 위해 재심사를 진행하라”고 통보했다. 인권위는 “부친의 사망은 3년 앞선 2009년이어서 김 이병의 자살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며 “군대에서 폭행·가혹행위와 그 스트레스로 자살한 사실이 인정돼 재심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원성 자자한 軍, 이번엔… 가혹행위로 자살 의심 병사 ‘일반 사망’ 통보
입력 2014-08-07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