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로부터 혹독한 질타를 받고 있는 우리 군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28사단 의무지대에서 일어난 윤모 일병 사건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잔인한 가혹행위는 상상을 넘는 것으로 참담함 그 자체다. 그동안 병영에서의 가혹행위가 사라졌다고 외쳐 온 군 당국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더욱이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고자 했다니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간 군이다. 군이 잘한 일도 있을 텐데 온 나라가 분노로 격앙된 상황이라 어느 누가 나서서 한마디 변명할 처지도 안 된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공직기관의 무능함과 위기관리 리더십 부재가 도마 위에 오른 터에 잔혹한 병영악습으로 병사가 세상을 등졌으니 입이 열이라도 할 말 못하게 된 것이다.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땅에 떨어졌다. 연일 쏟아지는 비판 여론에 힘입은 일부 정치인들의 과도한 군 때리기로 지휘관들은 휘청거리고 사기는 와해 직전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냉정히 짚을 필요가 있다. 잘못을 반성하되 오해가 있는 부분은 제대로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윤 일병 사건은 60만 대군의 병영 안에서 다반사로 행해지는 일상적인 가혹행위가 아니라 특수한 지역에서 발생한 반인륜적 군기위반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복무한 1970년대 중반 병영에서의 구타행위는 있었으나 이번 사건처럼 ‘정신병자들’이나 함직한 해괴한 일은 들은 바 없다. 얼마 전 철원지역 포병부대에서 155㎜ 견인포 사수로 복무하다 제대한 지인의 아들에게 물어봤다. 그도 28사단 사태를 ‘엽기적’이라 할 만큼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다. 며칠 전엔 강원도 현리의 독립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만기 전역한 병사의 진료기록을 문의코자 방문한 것이다. 해당자가 관심병사가 아님에도 면담일지와 진료, 치료에 대한 기록들이 감탄할 정도로 잘 관리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윤 일병 사건처럼 인권 사각지대에서 위협받는 우리 아들딸들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병영에서 일어나는 가혹행위, 고질적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단호하다. 가장 먼저 지금까지 군이 독자적으로 행했던 자체 개혁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열린 개념의 접근이 요구되는 이유다. 민·관·군 전문가 그룹이 협력하여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병영문화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체계 또한 정교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문가 그룹은 지속적 활동이 보장되도록 상설화되어야 하며, 병사들에겐 하시라도 병영악습을 외부에 고발할 수 있도록 여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우선 병영문화를 ‘과잉 단순화’시켜선 안 된다. 악습 뿌리 뽑기는 도로를 포장하듯 ‘단 한방’에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병영악습은 마치 기름진 토양에 잡초 자라듯 하는 속성이 있다. 사실 군의 주둔지는 수천(數千)에 이르며 임무와 기능이 다양하고 구성원들 또한 수시로 바뀐다. 악습 제거는 농부가 김을 매듯 꾸준히 할 일이지 사건이 터지면 전 군을 대상으로 단체기합 주듯 해선 곤란하다. 그러기에 가해자는 물론 책임을 져야 할 지휘계통 관계자에 대한 일벌백계는 당연하나 책임 대상을 명확히 제한해야 한다. 군을 상대로 일제의 잔재인 단체기합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한편 병사가 다루는 비밀이 대단치 않아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자는 주장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일이다. 음어와 암호는 물론 병사들도 간부와 같이 군사비밀을 사용하고 있음을 경시한 인식이다. 한 병사에 의한 작전보안의 실패는 전쟁의 승패로 직결될 수도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제 병영의 고질적 병폐를 도려내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의 명예는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명예는 군의 혼이요 자부심이자 전투력 그 자체다. 군 스스로 명예를 지켜야 하나 우리 국민들이 지원할 무한책임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고성윤 (전 국방연구원·현안연구위원장)
[시사풍향계-고성윤] 병영악습,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입력 2014-08-07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