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실익 없다” 미국外 특허訴 모두 접는다

입력 2014-08-07 03:53

삼성전자와 애플이 3년4개월째 이어온 소송을 접는다. 중국 업체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서 실익이 없는 소송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심 소송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소송은 그대로 진행키로 했다.

삼성전자는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애플과 진행 중인 특허소송을 철회키로 합의했다고 6일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 일본 네덜란드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호주 등 9개 국가에서 진행하던 소송은 모두 철회하게 된다.

양사는 2011년 4월 애플이 삼성전자를 특허 침해로 제소한 것을 시작으로 10개국에서 30여건의 소송을 벌여왔다. 삼성은 스마트폰·태블릿PC와 관련한 표준특허를, 애플은 디자인, 사용자경험(UX) 등 상용특허를 중심으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언제 소송 취하를 결정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7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코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회동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9일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소송 취하 배경도 따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수년간 소송을 진행하면서 이겨도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송 대상 제품들은 나온 지 몇 년 지난 제품들로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또 문제가 된 특허는 다음 제품이 나올 때 다른 기술을 적용해 우회하기 때문에 특허소송 때문에 최신 제품 판매에 지장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이 드는 소송을 해봐야 감정싸움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데 양사가 뜻을 모은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위협이 점차 현실화되는 상황이어서 소송에 힘을 빼기보다는 신제품 개발과 판매 촉진에 집중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애플 모두 중국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내 소송은 그대로 진행 중이어서 양측이 완전한 화해 모드로 들어섰다고 속단하기엔 이르다. 미국은 소송의 시작점이자 애플의 홈그라운드라는 점에서 이 소송을 유지한다는 건 '할 싸움은 하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합의는 양사 간 특허 라이선싱 협의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특허 침해 소송을 취하하면 특허 사용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소송 취하는 협상을 통해 대가를 지불하고 특허를 사용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애플은 라이선싱 협의 여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소송만 철회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미국 소송은 그대로 진행한다고 했다. 때문에 삼성전자와 애플이 소송도 '선택과 집중'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법원은 올해 3월 1차 소송에서 삼성전자에 9억3000만 달러 배상 판결을 내렸다. 1차 소송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평결이 내려진 2차 소송에서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서로 특허를 침해했다는 배심원 평결이 나왔고 곧 재판부의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양사가 한 번에 모든 소송을 접기엔 부담스러워 작은 소송부터 철회하고 미국 소송에 대한 이견도 줄여나가는 수순의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