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인간경영’ 박용학

입력 2014-08-07 02:46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신참 경제부 기자 때 한국무역협회(무협)를 담당하면서 회장이던 그와 대면했다. 지난 2일 백수(白壽)의 나이로 세상을 뜬 박용학 대농그룹 명예회장 이야기다. 그는 막내아들뻘인 출입기자들을 늘 격의 없고 소탈하게 대했다. 70대였음에도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 선수급 수준으로 스키, 수영을 즐겼다. 홍옥처럼 발그레한 건강한 얼굴빛이 기억에 남는다.

1915년생인 그는 재계 1세대 대표 인물의 한 사람이었다. 동향에다 동갑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각별히 가깝게 지내면서 재계를 이끌어왔다. 46년 대한계기제작소를 설립하면서 사업을 시작, 비료, 무역, 면방직, 유통업에 진출하며 사세를 키웠다. 70년대 오일쇼크로 주력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10년 만에 위기를 극복, 대농그룹을 재계 30위에 올려놓았다.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일경제협회 회장 등 대외활동도 활발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엔 재계 인사들과 함께 방북하는 등 남북교류사업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장남이 물려받은 그룹은 IMF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몰락하고 만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의 기업관은 ‘인간경영’과 ‘사업보국’이었다. 이는 ‘인간중심’ ‘신용과 믿음’이라는 대농그룹의 사훈에 그대로 반영됐다. 기업이 어려워도 사람을 쉽게 버리지 않고 정년을 보장하는 평생고용을 실천했다. 한편으로 “기업은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 그는 거액의 사재로 장학사업을 했고 특히 산업체 학교 학생들에게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요즘 재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뜻하지 않은 것 같다. 온정적이었던 정부의 눈길도 약간 싸늘해졌다. 최경환 경제팀은 사내유보금 과세 등을 통해 재계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전경련, 대한상의, 무협,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한목소리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던 구심점도 없다. 주요 기업의 수장이 대부분 창업자 2∼3세로 바뀌었고, 경영환경이 크게 달라진 탓이겠지만 과거 한국경제를 견인하고 국민들에게 박수 받던 재계의 영광은 찾기 어렵다. 고용을 통한 기업의 성장이 아니라 자본에 기반한 부의 증식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사람들을 품어 ‘재계 마당발’로 불리기도 했던 재계 어른, 박 명예회장의 부재가 더 아쉬운 까닭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