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영란法 뭉그적대는 국회보다 서울시가 낫다

입력 2014-08-07 02:40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침내 ‘관피아’ 척결을 위한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서울시 징계 규칙 등을 통해 재취업 비리 등 공직사회의 적폐를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김영란법)’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서울시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긴 하지만 공직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은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로서는 조속한 김영란법 처리라는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됐다.

‘박원순법’으로 불리는 서울시 공직사회 혁신 대책은 가히 획기적이다. 단돈 1000원이라도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처벌된다. 적극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다 적발되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가 적용돼 최소 해임 이상의 징계를 받는다. 퇴직 공무원 재취업 규정도 대폭 강화됐다. 김영란법에는 이에 대한 별도의 제한이 없다. 이에 따르면 퇴직 후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퇴직 공직자 부정청탁·알선행위 신고센터도 운영하고 퇴직 공무원 특혜제공 신고센터를 설치해 각종 공사, 용역, 물품 구입 등을 둘러싼 비리를 신고 받는다. 특히 심사 결과에 따라 최대 20억원까지 포상한다. 이와 함께 사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직무는 맡을 수 없으며 대상 범위도 공무원 본인, 배우자의 가족까지 확대했다.

부정청탁 근절 대책도 강화됐다. 우선 부정청탁을 받게 되면 온라인에 이러한 사실을 등록하도록 의무화했다. 청탁 내용은 시장이 직접 보고받는다. 부정청탁을 받고 업무를 처리하면 금품수수 등이 없어도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받는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퇴직 공무원의 사기업체 취업심사 결과도 서울시 홈페이지에 올려 공무원의 퇴직 전 소속 기관과 직급, 취업허가 여부 등 정보를 밝힌다.

박 시장은 “청렴에 있어서만큼은 서울시가 시민의 기대 수준에 부응하고 다른 공공기관의 기준이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기분 좋은 말이다. 잠재적인 차기 대권 후보의 청렴 이미지 구축을 위한 행보로 폄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대적인 요구에 먼저 다가가는 자세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이후 관피아 척결을 국가적인 과제로 내세웠던 정치권은 그동안 뭘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김영란법은 2012년 8월 입법예고됐지만 지금까지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퇴직 공무원 재취업을 제한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관피아방지법)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관피아 척결을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