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동환] 항공기 사건·사고들과 MIKTA

입력 2014-08-07 02:02

지난해 3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6차 세계항공운송회의에 참가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로베르토 코베 당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회 의장은 항공운송 역사상 2012년도에 항공사고 희생자가 가장 적었으며 9·11테러 사건을 교훈 삼아 항공보안도 유례없이 견고해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지나친 자만의 대가인가. 불과 1년이 조금 지나 말레이시아항공 MH-370편 실종,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미사일 격추, 또 지난달 23일과 24일 대만과 알제리에서의 민항기 추락사고 등 비극적인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인류가 100여년간 쌓아올린 항공안전의 제도적 틀을 겸손하게 되짚어 볼 시점이다.

항공운송은 이미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년간 세계에서 31억명이 민항기를 탔으며 3200만여편의 항공기가 운행됐다. 2030년이면 이용자 수는 60억명, 운항 항공편은 6000만편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유로(약 2만8000원) 미만의 저가항공 상품도 출시되고 있으며, 항공운송업은 세계적으로 약 6000만명이 종사하면서 연간 2조 달러(2000조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 이러한 국제민항의 발전은 항공기술의 발전, 항공운송업 종사자들의 노력, 관련 법제도의 부단한 개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말레이시아항공의 실종과 격추는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지만 ICAO와 회원국들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부여했다. MH-370편 실종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항공기 위치추적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기에 기술, 장비 등의 결함을 보강하려는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

MH-17편의 격추는 무기로 민항기를 공격한 인재(人災)였기 때문에 제도적 측면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격추 사건이 나자마자 항공법 전문가들은 무력분쟁 지역의 공역에 대한 위험 고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논의했다. 영공국에 위험 고지 책임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연료를 아끼기 위해 위험을 알면서도 분쟁지역 상공의 항로를 이용한 항공사나 국제민항의 안전을 위한 협력기구인 ICAO에는 책임이 없는가라는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ICAO 회원국들은 MH-17편의 격추를 계기로 이사회와 고위급 안전회의에서 항공안전과 보안에 관련된 기존 법·제도에 결함이 없는지 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ICAO 이사회 의장 및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몬트리올에서 국제항공운송협회 등 항공업계 대표들과 긴급회의를 갖고 분쟁지역 상공의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동시에 2015년 2월중 고위급 세계항공안전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항공화물 운송량 6위인 대한민국의 정부대표로서 외교부도 항공 안전과 보안을 위한 논의에 최대한 기여할 방침이다.

아울러 MH-17편의 격추로 희생된 298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의 진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책임자가 밝혀지고 사법정의가 실현돼야 한다. 사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조한 유엔 안보리 결의 2166호와 지난달 26일 발표된 멕시코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터키 호주로 구성된 믹타(MIKTA) 외교장관 공동성명은 피해국들과 사법당국에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이번 믹타 외교장관 공동성명은 지난 4월 북한의 추가 핵실험 위협 등 도발행위 자제를 촉구한 공동성명에 이어 두 번째로 글로벌 이슈에서 중견국 간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출범한 믹타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우리나라 주도로 출범한 5개 중견국 협력 메커니즘인 믹타는 우리 외교가 4강 외교를 넘어 세계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의 역할도 주도적으로 수행한다는 차원에서 앞으로 새로운 외교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최동환 주 ICAO대표부 대사